산행을 하루 앞두고 기상청의 예보는 21일부터 올 여름 장마가 시작된다고 한다. 더구나 이날 충청지방에 6~70mm 정도 비가 내린다는 보도에도 나는 거침없이 준비를 한다.
특히 6월은 웅진산악회 7주년 행사까지 있어 개인별 음식준비는 아무것도 하지 말란다. 뭐 대단한 준비를 해간 적은 없어도 바쁜 내게 일감 덜어주니 상당한 부조다.
물과 우비, 세안 도구만 챙기고도 시간이 넉넉해 새벽녘까지 푹 잠을 잘 수 있는 특별보너스까지 얹어준 셈이다.
웅진산악회의 산행 날엔 오던 비도 멈추는데 오늘은 정녕 비가 오려는지.. 엎어지면 코 닿을 논산시 양촌, 일행을 태운 버스는 언제랄 것도 없이 바로 도착했다. 하늘은 잔뜩 찡그리고만 있다.
서너 시간씩 걸리는 원거리 산행과는 달리 근거리 산행 또한 허리 통증을 완화시키니 이 또한 나를 돕는다.
우린 대둔산 자락을 휘감고 있는 발왕산, 아니 바랑산을 우중 산행할 각오로 떠나 왔다. 날씨관계도 그렇고 지난 6일 특별산행으로 전북 부안의 위도를 다녀와서 많이 불참할 것으로 보였는데, 여느 때보다 오히려 많다.
거기에 신입회원까지 눈에 띈다. 신입회원 중에 평소 잘 알고 있던 기병이 엄마를 산행에서 만나니 더욱 반갑다.
농가와 시설하우스만이 띄엄띄엄 고즈넉한 시골길을 지키고 서 있다. 길가로 오디, 호박, 취나물, 복문자 등이 탐스럽다.
회원들이 우르르 몰려가 뽕나무의 열매인 까만 오디를 한 움큼씩 쥐고 입에 넣기 바쁘다. 과수원에서 자란 어린 시절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감나무, 배나무, 포도나무가 빼곡한 과수원 울타리에 군데군데 뽕나무가 심어져 있었고, 뽕잎은 누에차지, 달고 맛있던 계절간식 오디는 내 차지..
입과 혀는 물론이고, 손에서 옷까지 검붉게 물드는 줄도 모르고 마냥 좋았던 그 시절. 이렇듯 자연은 우리를 순수한 동심의 세계로 안내한다. 누구의 부탁 없이도 아낌없이 내놓는다.
시골 농로를 벗어나자 정비되어 있지 않은 오솔길 좌우에는 제멋대로 자란 산죽이 내 키를 넘을 듯 무성하게 자라있다.
그래도 불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아기자기한 모습이다. 온다는 비대신 몸에선 땀방울이 빗물 되어 흘러내린다.
아직 월성봉에는 반도 못 미쳤지만 긴 가뭄 탓에 비경을 자랑하던 수락계곡은 시원한 물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숨 죽여 흐느낀다. 메마른 계곡이 내 그리웠던 예쁜 추억까지 앗아간다.
쉬쉬.. 월성봉 흔들바위로 모두 다 올려 보내고, 최 선생도 또 그렇게 사라지고 남은 우리들은 서로 킥킥거리며 수락재를 쉬엄쉬엄 과일 먹고, 차 마시며 여유롭게 다른 회원들 보다 한 시간 쯤 일찍 하산해 벌곡 개천가 식당에서 샤워까지 마치니 이보다 더 상쾌할 순 없다.
행사장에 도착, 시원한 맥주로 갈증을 풀고 오늘의 하이라이트 창립7주년 기념행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왁자지껄, 짝짝짝, 위하여 다들 기분 짱인데, 우리 최 선생 배탈이 나 몹시 괴로운 모양이다. 다들 가수 뺨치게 잘한다. 익살스런 오락부장의 숨김없는 원맨쇼(사실은 원우먼쇼)에 배꼽을 잡는다.
저런 끼를 어떻게 한 달 씩이나 참는지 신통방통하다. 보고만 있어도 활력이 샘솟는다. “내가 안 왔으면 어떻게 이런 걸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하니 우리 진국장님 사모님 왈, “그곳을 가 본 사람만이 그 곳을 안다”고 하신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인다고 했으니 곧 사람은 체험을 통해서만이 알게 되고, 아는 만큼 보이고 성숙된다는 뜻이리라.
이 자리에 없다면 이 감흥을 어찌 알까. 우중 파티에 흥은 점점 더 무르익고.. ‘한 잔 먹세 그려. 또 한 잔 먹세 그려. 꽃 꺾어 셈하면서 무진무진 먹세 그려. 이 몸 죽은 후에 지게 위에 거적 덮어 졸라매어 지고 가나. 화려한 꽃상여에 만인이 울며 가나. 억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 속에 가기만 하면 누른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 쌀쌀한 바람 불 때 누가 한 잔 먹자 할꼬. 하물며 무덤 위에 원숭이 휘파람 불 때 뉘우친들 무엇하리.’
아직까지는 사견이기는 하지만 10주년 행사는 뜻 깊게 열었으면.. 노래되고, 춤 되고, 개그 되는 회원들에 조금만 준비해서 어려운 이웃위한 특별행사를 연다면..
▲ 바랑산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에 있는 산으로 해발 555m, 노령산맥으로부터 남서쪽으로 뻗어내린 대둔산 줄기에 월성봉(月城峰:650m)과 함께 자리잡고 있다.
대둔산의 명성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월성봉-바랑산 능선은 거대한 암벽과 암봉이 돋보이며, 대둔산의 낙조대에서 서쪽으로 뻗은 능선과 함께 그 사이에 조성된 멋진 협곡과 수락폭포 등 구경거리도 많다.
정상에서는 북쪽으로 계룡산, 연천봉, 살개봉, 천황봉, 향적산이 보이고 금남정맥 연봉들이 바라보인다.
월성봉과 바랑산을 따로 떼어서 산행하면 시간도 너무 짧고 중간에 내려올 길도 마땅치 않기 때문에 두 산을 연결하는 산행코스가 대부분이다.
양촌면 중리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위령탑과 동쪽 길을 지나 명주바위(용바위)와 수락재를 거쳐 월성봉과 바랑산을 오른 다음 남쪽 능선을 따라 중리로 내려오는 코스는 4~5시간 정도 걸린다. 대둔산·월성봉과 연결하여 3개산을 종주할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