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쳐가는 것, 머무는 것

2007. 7. 4. 01:11아름다운 글

스쳐가는 것, 머무는 것
이계숙 시민기자 칼럼
2007-07-01 22:19:22 function sendemail(w,h){ var sWinName = "emailarticle"; var cScroll = 0; var cResize = 0; var cTool = 0; var sWinopts = 'left=' + ((screen.width-w)/2) + ', top=' + ((screen.height-h)/2) + ', width='+w+',height='+h+', scrollbars='+cScroll+', resizable='+cResize; window.open('./?doc=function/mail.php&bo_table=column5&wr_id=119',sWinName,sWinopts); } function sendprint(){ var sWinName = "printarticle"; var cScroll = 1; var cResize = 1; var cTool = 1; var sWinopts = 'left='+0+', top='+0+', width='+720+', scrollbars='+cScroll+', resizable='+cResize; window.open('./?doc=function/print.php&bo_table=column5&wr_id=119',sWinName,sWinopts); }
학창시절 동아리 친구들과 ‘like(좋아하다)’와 ‘love(사랑하다)’의 차이가 뭐냐고 열띤 토론을 한 적이 있다.

“like가 발전하면 love가 된다.”
“like는 ‘불고기’, love는 ‘우산’과 같다.”
“like는 밝고 화려하며, love는 안타깝고, 애처로운 것이다.”
“like는 스쳐가는 것, love는 머무르는 감정”

비록 말장난이며 억지이론일지도 모르지만 그 애들의 여러 가지 생각들이 그런대로 일리가 있구나 싶었다.

like와 love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like는 ‘좋아하다, 마음에 들다,~을 바라다, 탐나다, ~을 하고 싶다’ love는 ‘사랑하다, 그리워하다, 좋아하다’ 정도로 풀이된다.

아마도 like보다는 love가 오래된 포도주처럼 진하게 우러나오며 스쳐가는 것보다는 머무르는 감정일 것 같다. 둘 중 굳이 맘에 드는 단어 하나를 선택하라면 난 Love를 잡겠다.

우리의 삶은 많은 스쳐지나가는 일들과, 더러는 머무르는 것들로 점철된다. 특별히 나쁜 일이 아니라면 사람들은 잠시 스쳐가는 존재가 되기보다는 누군가의 가슴속에 선명하게 남아있기를 바란다.

어떤 이는 화려한 몸짓과, 현란한 말솜씨로 사람을 잠시 현혹시키기도 하지만 그의 행동이 말과 다를 경우 “막상 포장지를 뜯고 보니 내용물이 부실하구나”라는 속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면 지각 있는 이들은 그를 금방 기억 속에서 지워버린다.

그러나 평소 드러나지도 않고, 과묵하며, 생색도 안 나는 뒷바라지를 도맡는 사람의 어눌하지만 호소력 있는 말은 뚜렷하게 각인된다.

잔재주가 많은 사람은 일시적으로 중요한 자리에서 돋보이거나, 유력한 사람의 눈에 띄도록 행동해 세인들의 주목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 재주의 얕음과, 덕이 없음에 주변사람의 원성을 듣게 되고 그가 결정적으로 곤경에 처하면 사람들은 등을 돌린다.

그러나 수수하고, 겸손하여 별다른 재능이 없어 보이지만 상하좌우를 세심하게 보살피고, 묵묵히 치밀하게 준비하는 이는 결국 큰 재주꾼으로 칭송받아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된다.

잠깐 화제를 몰고 등장하는 화려한 배우보다 수수하고, 은은한 분위기를 가진 사람이 오래 기억에 남는 것처럼..

조직에서도 누구와, 어느 실세와 친하면 유리할까를 열심히 저울질하면서 여러 곳에 다리를 걸치고 쉴 새 없이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은 결국 지조 없음에 어디에서도 중용(重用)되지 못한다.

그러나 비록 아무리 불리해지고, 곤경에 처한다 해도 한 곳에만 바위처럼 박혀있는 사람은 적어도 자존심을 망가뜨리지는 않는다.

철새는 언젠가는 날아가지만, 멀리 간 비둘기는 반드시 평화로운 소식을 가지고 제 둥지를 찾아온다.

봄 처녀처럼 화려한 날갯짓을 하며 나타나는 철새는 금방 잊혀 지지만 다른 종족과도 친화력 있게 어울리며, 집을 지키는 비둘기는 오래 남는다.

항구의 고깃배들은 스쳐가지만 오고가는 배들을 거들어주는 예인선은 제 소임을 다하기 위해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체질에 잘 맞고, 필수불가결한 미량원소인 비타민E형의 사람을 만났지만 부득이 결합하지 못하고 대신 비타민 C형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원래의 비타민 E보다 상대의 결핍을 흡족하게 충족시키지 못하는 비타민C는 평생 ‘꿩 대신 닭’의 설움을 안고 은근히 홀대받으며 주변만 맴도는 운명으로 산다. 비타민C를 선택한 이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비타민E가 머물러 있으므로.

온갖 사연을 죄다 쏟아 놓으며 눈물, 콧물을 동원하며 펑펑 우는 사람의 모습은 더 이상 궁금할 게 없으므로 잠시 후 잊혀 지지만, 무언가 많은 할 말을 머금은 물기어린 눈은 우리의 시선을 머무르게 하며, 그 속내를 듣고 위로하고 해결해 주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한다.

자로 그은 듯 정확하고 한 치도 흔들림 없이 냉철하며 지적이고 완벽추구형인 사람을 흔히들 ‘왠지 가까이 가기엔 먼 당신’이라고 한다.

그러나 얼핏 허술하고, 어설프게 보이지만 꾸밈없고, 이해심과 정이 많아 소위 감성지수가 높은 사람은 어디를 가나 환영을 받는다.

달리는 고속도로의 차창 속에서는 드높은 빌딩 숲과 휘황찬란한 광고판만이 난무한다.

그러나 천천히 가는 완만한 국도는 수려한 자연경관에 취하여 일상의 시름을 잊게 한다. 더러 등이 굽고 여윈 할머니를 만나면 자기 부모가 생각나 얼른 차에서 내려 모셔다 드리기도 한다.

차창으로 보이는 잔디밭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재잘거리며 도시락을 까먹는 병아리 색 유니폼을 입은 유치원 아이들의 소풍 나온 정경도 사랑스럽고, 시냇가에서 풀 뜯는 염소와 천진하게 뛰어노는 시골아이들의 평화로운 모습에도 운전자의 시선은 머무른다.

이처럼 고속도로와 같이 목표, 미션, 성취 등으로 한눈을 팔지 않는 길은 인생의 하드웨어와도 같다면 느림과 여유로움의 미학인 ‘다운쉬프트(DownShift)’의 훈훈함을 느끼게 하는 국도는 꽉 짜여 진 삶에 윤기와, 잔잔한 향기를 주는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다.

고속도로는 당면한 목적지 외에는 모든 게 스쳐가지만 국도에서는 시선이 곳곳에 머무르면서 한참동안 상념에 젖어서 모처럼 자신을 돌아보고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인생에서 이루고, 얻어야 될 것들을 생각하면서 앞만 보고 질주하는 삶은 어느 정도까지는 얻은 자, 가진 자의 여유를 가질지 모르나 치열한 획득 후엔 물밀 듯 허탈감이 엄습하고, 곧이어 더 큰 것을 얻고자하는 하는 피곤한 여정이 계속된다.

빠르고 편리한 지식정보화 사회를 사는 사람들은 어느덧 ‘첨단’이라는 미명하에 펼쳐지는 복잡함과 다기능(多技能)에 멀미를 느끼고, 오히려 간단한 것에 향수를 느끼면서 기능이 간소화된 휴대폰이나 가전제품을 찾게 된다.

신속정확을 요구하는 시대에 따른 추세이겠지만 인스턴트식 사랑이나 양은 냄비처럼 속전속결하는 감정처리에 점차 신물이 난 사람들은 한국인 특유의 섬세하고 은근한 정서를 그리워한다.

지진과 해일 등 자연재해와 전쟁에 자주 시달려온 일본에서 단호하고 진퇴가 분명한 사무라이정신과는 대조적으로 순수하고 따뜻한 애정소설이 발달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역사와 유행은 돌고 돈다고 하듯이 현재 좋은 것이 영원히 좋을 수는 없고 어제의 선(善)이 내일의 악(堊)으로 바뀔 수도 있는 게 세상이치가 아닐까?

외양의 밝고 좋음의 이면에서는 또 다른 불가결한 욕구가 싹트기 마련이며 그러기에 헤겔의 정반합 논리가 그러하듯, 밝음과 어둠, 그리고 선과 악은 결국 화해하여 또 다른 것을 창출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얘기지만, 고속도로에서처럼 우리 삶을 허망하게 스쳐가는 것은 어쩌면 ‘크고, 중요하며 밝고, 좋다고 생각하는 것’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외침으로 다가오는 음지의 소리는 우리의 눈길을 머물게 하고, 심금을 울리며 오래도록 여운을 남기면서 그나마 메마른 인간성에 갈증을 풀어 주는 오아시스와 같은 것이다.

이계숙(공주시 농업
기술센터 홍보담당)
불고기처럼 맛있고, 인기 상종가를 달리는 영화배우처럼 화려한 것을 좋아하기(like)보다는, 뭔가 부족하고 애처로운 사람의 한쪽 귀퉁이를 채워주고 우산이 되고 싶은(love) 사람에겐 아마도 스쳐가는 것보다 머무는 것이 많으리라.

급하게 스쳐가는 것(like)보다 잔잔하게 그림자를 남기고 머무는 것(love)이 많은 삶이 분명 더 풍요롭고 따뜻한 인생임을 믿고 싶다.
< 공주뉴스=이계숙시민 기자/ news@gongjunews.net> >> 이계숙시민 기자 의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