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서해교전이 일어난 지, 5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나는 아침 일찍 그대들이 고이 잠들어 있는 대전국립현충원의 장교 묘역과 사병 묘역을 둘러보았습니다.
고요와 정적, 그리고 침묵만이 감도는 그대들의 무덤가에서 나는 그대들의 이름과 얼굴을 하나씩 떠올려보면서 ‘앞으로 내가 그대들을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앞으로 그대들의 투철한 군인정신과 고귀한 나라사랑 정신이 퇴색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또 많은 국민들이 그대들의 이름을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을 굳게 약속합니다.
비겁했던 북한 해군과 참여정부의 주역들
한·일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6월 29일! 그대들은 우리 영해를 무단으로 침범한 북한 해군을 영해 밖으로 몰아내는 평화 작전을 전개했습니다.
그대들은 북한 해군이 동족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 상식에 대한 최소한의 기대, 하늘의 섭리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을 지킬 것으로 기대하며 순순히 물러설 것으로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 해군은 비열한 기습총격을 감행해서 그대들의 목숨을 빼앗았고, 국민들의 혈세로 건조한 고속경비정 ‘참수리 357호’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해야했습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얘기가 바로 그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입니다. 나는 그대들이 죽음을 맞으면서도 최후의 순간까지 방아쇠를 쥐고 있었던 사실에서 뜨거운 군인정신과 책임의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 사회는 연승가도를 달리던 한국 축구팀의 선전善戰 때문에 나라 전체가 축제 분위기로 들떠 있었고, 따라서 차가운 서해 바다에서 일어났던 그대들의 숭고한 희생은 대다수 국민들의 애도와 추모를 받지 못했습니다.
나 또한 그런 국민들 가운데 하나였는지 모릅니다. 이 지면을 빌어 그대들의 영전에 진심으로 사과하며 그대들의 용서를 빕니다. 그대들에게 우리 모두는 죄인이었습니다.
하긴 대한민국 대통령이자 국군통수권자인 노무현도 그대들의 싸늘한 시신이 안치된 병원에 얼굴조차 내밀지 않았습니다.
노무현은 장갑차에 치어죽은 효순이와 미선이의 죽음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과 위로의 얘기를 전했지만, 그대들의 전사 소식에는 애써 무관심으로 일관했습니다.
그대들이 마지막으로 이승을 떠나는 날에도 노무현은 추도사 한 줄을 읽지 않았으며, 헌화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국무총리나 국방장관이라는 인간들도 매한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이미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었고, 대한민국의 정치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오로지 빛바랜 햇볕정책에 대한 애타는 미련과 세계에서 가장 실패한 지도자 김정일 동지(?)의 눈치 보기만 있었을 뿐입니다.
더욱 더 기가 막혔던 것은 노무현, 국무총리, 국방장관의 정신 나간 행동을 따지며 분노하는 국민들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부시 대통령의 감성지수를 본받아라!
한국인들, 특히 한국의 젊은이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이라크에 파병했다가 양쪽 다리를 잃은 어느 상이용사가 부시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존경하는 부시 대통령 각하! 지금 저는 의족을 하고 있는 상이용사입니다.
그런데 저는 대통령 각하와 함께 백악관의 잔디밭을 몇 바퀴 뛰어보고 싶습니다. 아직도 제가 건장하다는 것을 직접 확인해보고 싶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부시 대통령은 지금 달리기를 하면 안 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관절염을 앓고 있는 환자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백악관의 부시 대통령 가족들은 “젊은 상이용사와 달리기를 하는 대신 백악관 초청행사로 그 젊은이를 따뜻하게 위로해주자”고 뜻을 모았지만, 부시 대통령은 가족들의 제안을 일축했습니다.
그리고는 의족을 한 상이용사와 함께 백악관 뜰을 달리면서 그 젊은이의 투철한 군인정신과 애국심에 대해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모습을 TV로 지켜보면서 ‘왜 미국이 위대한 나라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일부 인사들, 특히 좌파 인사들은 미국을 맹비난하고 그들의 진의를 왜곡시키기 위해서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나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배울 게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날 부시는 미국의 최고 권력자이자 국군통수권자로서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설령, 그것이 부시의 쇼맨십에서 나온 것이라고 폄훼하는 한이 있더라도 대통령은, 국무총리는, 국방장관은 적어도 그런 모습을 자주 보여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군인은 단지 월급을 받고 싸우는 용병이 아니라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뢰와 국민들의 뜨거운 성원을 받아야만 국가와 국민을 위해 자기 목숨을 기꺼이 내던질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타인을 진심으로 배려하고, 타인의 마음을 자극해서 메마른 눈물샘을 자극하고 그들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만들어주는 감성지수(EQ)에 관한 한, 노무현은 부시 대통령에게 한 수가 아니라 몇 수를 배워야 합니다.
참수리호 357호가 시사해주는 것
평택 해군 제2함대 사령부에 가면 수천발의 총탄자국으로 범벅이 된 채, 전시되어 있는 비운의 고속경비정 참수리 357호를 만날 수 있습니다.
북한 해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격침되었던 참수리 357호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남북분단의 현주소를 우울 모드로 입증해주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동안 DJ부터 노무현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대규모 물량공세로 김정일의 환심을 사려했던 햇볕정책이 얼마나 자가당착적이고 허망한 것이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해교전의 6인 용사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 ‘남북 간의 진정한 평화통일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구애작전에서 오는 게 아니라 절대적인 힘의 우위에서 온다’는 냉엄한 현실을 우리들에게 역설해주고 있습니다.
나는 좌파 인사들이 말하는 민족, 자주, 평화통일론에 대해서 더 이상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거짓말에 익숙한 자들이었고, 민족 자주 평화통일을 이룰만한 정치적 역량도, 지식과 지혜도 갖고 있지 못한 사이비 지도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말은 그럴듯하게 하지만, 그 실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온갖 허구와 가식으로 포장해 있음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본래 진보를 지향하는 좌파 인사들의 말 속에는 인민들의 내면에 감추어진 본능과 파괴욕구를 자극하는 말초신경제가 들어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현혹되고 따르게 되지만, 결국 그것은 실천하기도 어렵고 실현할 수도 없는 가상 세계의 환상에 불과합니다.
나도 한때는 좌파의 골수분자가 되기 위해서 치열하게 노력했던 오욕의 과거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동구권 국가들의 몰락과 세계화의 도도한 물결을 목도하면서 나는 좌파 이념의 현실적 한계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인민의 굶주림조차 제대로 해결해주지 못하는 이념, 피의 숙청과 끊임없는 계급투쟁을 부르짖는 이념으로는 디지털이라는 시대적 트렌드의 소용돌이를 피해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고뇌와 뼈를 깎는 자기반성의 시간을 통해 이제는 작은 정부론과 법치주의를 신봉하는 시장주의자로 거듭 태어났습니다. 나는 지금도 그때 행했던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합니다.
나는 이제 과거의 동지들이었던 좌파 인사들에게 정중하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 가운데 어떤 인사는 국립 현충원을 시대착오적인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살아 숨 쉬는 굴욕과 오욕의 공간이라고 폄훼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외부의 적으로부터 나라를 수호하는데 목숨을 걸고 싸웠던 희생의 역사가 있었습니까? 라고 말입니다.
또 어느 재벌회장이 자기 아들에게 부를 편법으로 상속하려 한 것을 비판했던 당신들이 북한의 권력세습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비판한 사실이 있습니까?
우리나라 군사정권의 인권탄압을 고발했던 당신들이 김정일 정권의 인권탄압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기억이 있습니까?
또 김정일에게 천문학적 숫자의 국민 혈세를 갖다 바치면서도 국군포로와 납북어부의 송환문제에 대해 꿀 먹은 벙어리로 일관했던 참여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던 사실이 있습니까?
어느 것 하나라도 제대로 답변할 수 없다면, 앞으로 더 이상 자기 스스로를 속이는 자기기만의 늪에서 하루빨리 빠져나오시기 바랍니다. 나는 그것이 진정으로 역사 앞에 참회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머리 숙여 그대들의 명복을 빕니다
오늘 나는 우리 국민들의 진심어린 애도와 추모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외롭게 이승을 떠난 6인 용사들의 거룩한 이름을 하나씩 불러보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윤영하 소령!, 한상국 중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이제 그대들의 제단에 피 끓는 마음으로 향을 피우면서 모윤숙의 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를 헌시獻詩로 바치고자 하오니, 그대들은 그대들에게 각박했던 세상인심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거두고 하늘나라에서 편안하게 영면하길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대들을 가슴에다 묻고 남은 인생을 힘겹게 살아가야 할 그대들의 부모님과 가족들에게도 따뜻한 위로의 인사를 전합니다.
그대들의 숭고한 희생과 조국을 위해 흘린 선혈이 있었기에, 우리는 오늘도 평화롭게 살고 있음에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서해교전 6인 용사들에게 바치는 헌시'
나는 자랑 스런 내 어머니 조국을 위해 싸웠고 조국을 위해 영광스리 숨 지었노니 여기 내 몸 누운 곳 이름 모를 골짜기에 밤이슬 내리는 풀숲에 나는 아무도 모르게 우는 나이팅게일의 영원한 짝이 되었노라
바람이여! 저 이름 모를 새들이여! 그대들이 지나는 어느 길 위에서나 고생하는 내 나라 동포를 만나거든 부디 일러다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달라고.
모윤숙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중에서 일부 발췌
김덕수 교수 |
충북대학교 경제학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 석박사과정을 이수하고 1995년도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동안 한국증권거래소 조사부, 고려대학교 강사, KAIST 경제분석연구실 선임연구원, 일본 과학기술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위원, 중등임용고사 출제위원, 국무총리실 소속 산업기술연구회 정부출연구소 기관평가위원, 자유민주연합 혁신위원회 위원장, 대구교통방송 경제해설위원, 공주대학교 기획연구부처장을 역임했다. 현재 공주대학교 교수회장 겸 사범대학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생각을 달리하면 희망이 보인다>, <김덕수 교수의 통쾌한 경제학>, <김덕수 교수의 경제 IQ높이기>, <김덕수 교수의 경제 EQ높이기>, <맨주먹의 CEO 이순신에게 배워라>, <한국형 리더와 리더십>, <게임의 지배법칙으로 자기를 경영하라> 등 다수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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