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 7. 10:27ㆍ아름다운 글
[기자수첩] ‘맹탕’ 인사청문회 속 의정활동비 인상
기자명 이건용 기자 입력 2024.01.07 08:25
‘꽃을 피운다는 건 꽃샘바람 뺨을 치고 황사 눈앞을 가리고 그 위에 흙비 쏟아져도 멈추지 않는 일이다. 멈추지 않고 자신의 전부를 밀어 올리는 일이다/ 밀어 올리는 흔적 하나하나가 모여 눈물겹고 아름다운 얼굴로 바꾸는 일이다. 대지에 눈 감고 있는 것들 하나씩 눈뜨게 하고 그래 다시 시작해야 할 때가 왔어 이렇게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일이다. 개나리꽃이 그러하다.’ 도종환 시인의 시 ‘꽃 피우기’다.
고향이 어디세요? 어느 고등학교 나왔나요? 어디 성씨세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던지는 통상적인 질문들로, 이중 하나라도 공통점이 있으면 급속히 친해진다. 서로의 공감대를 찾고 같은 관계로 묶기 위해 무던히 애쓴다. 이모, 고모, 할머니와 할아버지, 심지어 사돈에 팔촌까지 동원해 지연, 학연, 혈연 등 끈끈한 유대감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 서로의 관계나 만남이 ‘운명’으로 동일시된다.
김빠진 탄산음료나 맥주는 본래의 맛과 향을 잃어 종래는 버리게 된다. 김이 빠지면 특유의 톡 쏘는 맛을 잃게 된다. 한마디로 맛이 없다. 공주시의회 사상 첫 인사청문회는 무미건조(無味乾燥)했다. 시원한 사이다를 주문했는데, 미지근한 김빠진 사이다를 내놨다. 대체로 무난했다는 평가는 결국 ‘맹탕’이었다는 소리다.
예견된 일이지만, 처음이라는 이유로 치부될 일은 아니다. 의회 몫으로 배정된 3명의 공주문화관광재단 임원추천위원 구성이 독단으로 처리됐다는 이유로 40여 분간 정회 소동을 빚은 것을 제외하곤 눈에 띄는 대목은 없었다. 물 흐르듯 순탄한 진행 끝에 ‘후보 적합' 결론에 도달했다.
국회의 인사청문회마저 무용지물로 전락해 제도 개선 필요성이 대두되는 상황에서 너무 큰 기대를 했던 게 잘못일까? 의원들의 준비 부족이 부실 청문회로 이어졌다.
공주문화관광재단의 비협조도 한몫했다. 임원추천위원들의 면면은 물론 재단 대표 응모자들조차 파악하지 못한 깜깜이 상태에서 추상같은 질문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꽃을 피우기 위해선 추운 겨울을 이겨내야 한다. 시인의 말처럼 흔적 하나하나가 눈물겨운 일이다. 뜨거운 열정과 치열함이 마침내 꽃을 피울 수 있었다. 나태주 시인은 ‘처음 사는 인생, 누구나 서툴지’라고 위로하지만, 처음이라는 이유로 얼렁뚱땅 넘어갈 일은 아니다. 혹여 후보자의 장점을 찾고, 공감대를 찾으려는 자리는 아니었을지.
인사청문회가 정치 투견장이 되거나 망신주기로 일관해서는 안 되겠지만, 적어도 직무수행 능력이나 자질이 충분한지 꼼꼼한 사전 검증이 필요했다. 하지만 촌절살인은 없었다. 예상 가능한 질문만 쏟아져 후보자의 준비된 답변이 외려 돋보인 자리였다.
공교롭게도 인사청문회 열린 시간 의원들에게 매달 지급되는 의정활동비가 40만원 인상됐다. 의정비심의위원회는 이날 의정활동비를 월 110만원에서 150만원으로 인상하기로 잠정 결정, 주민 설문조사 후 최종 인상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의회는 지난해 월정수당을 223만원(6.2%) 인상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번에 또다시 의정활동비를 40만원 인상하게 되면 의정비(월정수당+의정활동비)는 3751만원에서 4231만원으로 오르게 된다. 공주시 재정자립도는 15.38%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의 2021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방의회 의원의 의정활동에 대한 만족도’를 묻는 질문에 “만족한다”는 응답은 13%에 불과했다. 만족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35.6%가 전문성 부족을 꼽았고, 29.1%가 부패 및 도덕성 부족을 꼽았다. 권익위의 2023년 지방의회 종합청렴도 평가 결과에 따르면 공주시의회는 3등급을 받았다. 인근 계룡시의회는 2등급이다.
떠들썩했던 분위기에 비해 실망이 큰 인사청문회였다.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든 만큼 일신의 각오를 새겨야 한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고 위안을 삼아서도 안 된다. 철저한 준비로 인사권자의 전횡을 제대로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 lgy@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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