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공주시의회의 ‘감정 예산’

2023. 12. 12. 16:16아름다운 글

[기자수첩] 공주시의회의 ‘감정 예산’
기자명 이건용 기자   입력 2023.12.12 14:34  수정 2023.12.12 14:41

이건용 기자

‘사중우어 옹치봉후’(沙中偶語 雍齒封侯). 사마천의 사기(史記) 유후세가(留侯世家)에 등장하는 말이다. 모래땅 위에서 모반을 꾀하자 옹치를 제후에 봉했다는 의미다.

한 고조 유방이 측근들에게만 벼슬을 내리자 나머지 장수들이 모여 모반을 의논했다. 그러자 장량은 유방에게 가장 미워하는 사람을 제후에 봉하라고 조언한다. 유방은 옹치를 제후로 임명해 불만을 잠재웠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우리의 옛 우리 속담과 상통한다.

미운 사람을 확실히 죽이는 방법이 있다. 바로 ‘인절미’다. 미운 시어머니를 죽이는 데도 아주 유용하다. 옛날에 시어머니가 너무 고약하게 굴어서 정말이지 도저히 견딜 수가 없던 며느리가 있었다. 시어머니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겠다는 위기의식까지 들자 용한 무당을 찾아갔다. 자초지종을 들은 무당은 시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인절미를 백일동안 끼니마다 드리면 이름 모를 병에 걸려 죽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결론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유추가 가능하다.

공주시의회가 내년도 본예산 중 103억 6200만 원을 삭감했다. 공주문화관광재단 운영 출연금 39억여원 중 2억 6000여만 원, 석장리축제 10억여 원 중 2억여 원, 여름축제 3억여 원 전액 삭감, 공주대교 자살방지 안전난간 2억 5000만 원 전액 삭감 등이 눈에 띈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시설관리사업소 예산으로, 집행부의 예산요구액이 단 1원도 반영되지 않고 전액 삭감되는 수모를 겪었다. 트리클라이민 정비 5000만 원, 산림휴양마을 야간경관 3억 5000만 원, 산림휴양마을 개선공사 2억 원, 금학생태공원 헬스투어 5000만 원, 치유의 숲 3억 1500만 원, 환경성건강센터 시설관리 7000만 원, 건강식당힐링카페 리모델링 3억 원, 곰나루관광지 도속음식점 리모델링 2억 5000만 원, 백제체육관 경기장 벽패널 교체 10억 원, 백제체육관 외벽 금속제패널 교체 10억 원 등 10건에 35억 8500만 원이 싹둑 잘려나갔다.

시설관리사업소의 격랑은 지난 8월 제2회 추경과 무관치 않다. 당시 시설관리사업소의 금학생태공원 생태관광 명소 조성사업과 데크 개보수비가 도마에 올라 뭇매를 맞았다. 한마디로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삭감된 예산안을 사전 설명도 없이 그대로 다시 올렸다는 이유였다. 시설관리사업소장의 항변은 눈엣 가시가 됐다.

당시의 미운 털이 이번 예산 심사에 그대로 투영됐다. 의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에 대한 단죄 시범케이스는 아니었을지. ‘괘씸죄’의 적용이자 ‘본때 보이기’식 감정적 대응은 아닌지.

‘감정 예산’의 폐해는 결국 시민들 몫이다. 시쳇말로 ‘일 안하면 그만’이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의회의 예산 삭감 권한은 낭비를 한 푼이라도 막기 위한 견제와 균형에 사용하라는 의미지, 감정을 내세우라고 준 무기가 아니다.

예산을 다루는 일을 ‘치킨게임’ 하듯 해서는 곤란하다. 두 대의 자동차가 마주서서 돌진하는 시합이 돼서는 절대 안 된다. 민생을 놓고 극한으로 치닫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공무원 길들이기 또는 집행부 길들이기, 시정 발목잡기의 ‘갑질’로 비춰질까 무섭다.

이건용 기자 lgy@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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