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수
공주대 교수
트로이 전쟁은 고대 그리스의 영웅 서사시에 나오는 그리스군과 트로이군의 전쟁을 지칭한다.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식에 초청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황금사과를 남겼다. 그 황금사과의 주인자리를 놓고 아프로디테, 헤라, 아테네가 경쟁했다. 그런데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심판을 내려 아프로디테가 황금사과를 차지했다.

아프로디테는 그 대가로 파리스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인을 아내로 맞이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유부녀인 스파르타 왕비 헬레네의 사랑을 얻게 해 주었다. 졸지에 마누라를 파리스에게 빼앗긴 메넬라오스는 형 아가멤논과 함께 트로이 원정길에 나서면서 트로이 전쟁이 시작되었다.

10년 동안 그리스군의 오디세우스와 아킬레우스, 트로이군의 헥토르와 아이네아스를 비롯한 수많은 영웅들이 격돌했던 트로이 전쟁은 ‘트로이 목마’라는 오디세우스의 계책 하나로 손쉽게 결판났다. 오디세우스는 거대한 목마를 만든 다음, 그 안에다 정예의 그리스군 특공대원 30여 명을 숨겨놓았던 것이다.

그리스군은 이 목마를 버려두고 퇴각하는 척했다. 목마를 승리의 전유물로 착각한 트로이군은 그것을 성안으로 들여놓고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그러나 그날 밤 목마 속에 숨어 있던 특공대원들이 육중한 트로이 성문을 열었다. 그러자 인근에서 대기하고 있던 그리스군이 물밀듯이 쳐들어왔고, 마침내 트로이성은 함락되었다. 그때부터 ‘트로이 목마’는 외부 요인에 의해서 내부가 무너지는 것을 의미하는 용어가 되었다.

역사적 대사건이 그랬듯이 트로이 전쟁에서도 반전의 기회가 있었다. 트로이의 마지막 왕 프리아모스와 헤카베의 딸 카산드라가 그 경우에 해당된다. 예언의 신 아폴론이 카산드라에게 구애를 신청했다. 그녀는 아폴론에게 사랑을 허락하는 대가로 예언능력을 갖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사랑에 눈먼 아폴론은 그녀에게 예언능력을 기꺼이 선물했다.

그러나 카산드라는 아폴론으로부터 예언능력만 전수받고, 사랑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화가 난 아폴론은 카산드라에게 작별의 키스라도 해달라고 졸랐다. 그러고는 카산드라와 키스를 하면서 그녀의 혀로부터 설득력을 빼앗아버렸다. 이제 그녀의 예언은 어느 누구도 믿지 않게 되었다. 부친인 프리아모스 왕도 “파리스를 스파르타에 친선대사로 보내면, 조만간 트로이에 큰 재앙을 몰고 올 것입니다”는 딸의 예언을 무시했다.

카산드라는 오디세우스의 계략으로 그리스군이 거대한 목마를 남겨놓고 위장 퇴각을 했을 때에도 “목마를 성안에 들여놓으면, 그것이 트로이를 멸망시킬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마침내 트로이는 멸망했고, 그녀는 그리스군 총사령관인 아가멤논의 전리품이 되었다. 아가멤논이 그녀를 데리고 귀국하려하자 그녀는 두 사람에게 들이닥칠 비극을 예언했다. 그러나 아가멤논 역시 그녀의 말을 무시했다. 결국 두 사람은 아가멤논의 마누라인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살해를 당하고 말았다.

왜적들에게 있어서 트로이 목마는 단연코 이순신의 창의력이다. 그중에서도 우리는 한산도 활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산도 활터는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로 근무했던 통제영 본부에다 설치했던 활터로써 사대(射臺)인 한산정과 그곳으로부터 약 15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설치된 과녁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한산도 활터에서 발견되는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사대와 과녁이 바닷물을 사이에 두고 설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런 구조로 만들어진 활터는 아마도 전지구상에서 한산도 활터가 유일무이할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기록의 달인이었던 이순신마저 한산도 활터를 그렇게 만든 이유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것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작가로서의 역사적 상상력과 추리력을 동원하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