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사람이 꿈을 꾸면, 그것은 그저 꿈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함께 꿈을 꾸면 그것은 현실이 된다” 이것은 돔 헬더 카미라가 한 말이다.
내가 그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미지未知의 세계에 도전하려는 사람(이하 혁신주체)들이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겨야 할 주요 사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혁신을 향한 도전과 ‘우도牛刀’의 진리
혁신을 한자로 표현하면 ‘革新’이 된다. 즉 ‘가죽(革)을 새롭게 한다(新)’는 의미의 혁신은 다른 사람의 살가죽을 벗겨야 할 만큼 엄청난 고통과 시련을 필요로 한다.
그런 만큼, 혁신에 실패할 경우에는 자기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비극적인 상황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혁신 주체들은 혁신에 앞서 다음과 같은 3가지 사항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한다.
첫째, 혁신주체들은 ‘왜 우리가 지금 시점에서 혁신을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에 대해 명확한 목적과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또 혁신에 성공할 경우, 조직과 구성원들은 실질적으로 어떤 혜택을 누릴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소상하게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는 한, 혁신주체들은 구성원들의 광범위한 공감대와 지지를 얻어낼 수 없다.
역사를 상고詳考해 볼 때, 대부분의 혁신이 실패로 끝났던 이유는 혁신주체들이 그러한 절차를 방관했거나, 철저하게 무시했기 때문이다.
둘째, 혁신의 목적과 필요성에 대한 구성원들의 공감대와 지지를 얻었다면, 이제부터는 투명하고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구성원들의 의견수렴과정을 철저하게 거쳐야 한다.
왜냐하면 혁신으로 인해 예상 밖의 이득을 보는 사람도 있지만 본의 아니게 엄청난 피해를 당하는 사람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는 전체 구성원들이 인정하고 납득할만한 혁신의 원칙과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구성원들의 동의를 구하는 작업(예; 전화 여론조사, 설문지 조사, 조직구성원들에 대한 인터뷰, 투표 등)을 확정지어야 한다.
이는 혁신을 위한 대의명분大義名分을 구축하고 효율적인 혁신전략을 수립하는 과정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만약 그런 과정을 생략한 채, 혁신을 시도한다면 그것은 독재자가 제멋대로 추진하는 혼자만의 개꿈으로서 혁신의 실패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래서 혁신주체들은 시종일관 겸손한 자세로 구성원들을 받들어 모시는 서번트servant 리더십을 실천해야 한다.
셋째, 혁신의 목표와 비전을 정립하고 구성원들로부터 광범위한 공감대와 지지를 얻었다면, 그 다음 수순은 톱 다운Top-Down 방식이 아니라 바톰 업Bottom-Up 방식에 입각해서 자발적인 내부혁신을 추진하는 일이다.
그래야만 혁신의 성공확률이 매우 높다. 이때, 혁신주체들에게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우도(牛刀; 소를 잡고 해체하는데 사용하는 칼을 의미함)를 놓치지 않는 자세’다.
잡은 소를 해체하는 작업은 소의 각 부위를 쓰임새에 따라 절단해 나가는 어려운 작업이다.
소의 생리구조를 잘 모르는 어설픈 사람이 우도를 잡으면, 쇠고기는 이 부위 저 부위가 한데 섞여져서 제 값을 받을 수가 없게 된다.
혁신도 마찬가지다. 우도를 놓치지 않는다는 것은 곧 혁신의 생리와 본질을 꿰뚫어보는 혁신 전문가의 자세로 가장 효율적인 혁신안을 도출한 후, 그것의 성공적인 실행을 위해서 목숨을 거는 혁명가적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도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게 혁신이다. 무수히 많은 리더들이 혁신을 시도했지만, 그들 대부분이 참패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개선改善이나 혁명革命은 오히려 혁신보다 성공할 확률이 훨씬 더 높다. 개선은 기존의 방식이나 패턴을 일부 변경시키거나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 나가는 것으로서 구성원들의 저항이 그리 크지 않다.
또 혁명은 가공할만한 군사적 무력이나 정치적인 힘을 이용하여 기존의 체제나 질서를 단숨에 전복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혁명 세력들에 대한 저항이나 반대는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설령 구성원들 중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섣불리 저항하지 못한다.
그에 반해 개선과 혁명의 중간에 놓여 있는 혁신은, 그것의 개념적 위치가 마치 샌드위치의 신세인 것처럼 수많은 저항세력들의 존재로 말미암아 성공하기가 매우 어려운 과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신주체들이 혁신의 성공을 지나치게 낙관한다는 게 더 큰 문제다.
‘100번째 원숭이 현상’이 시사하는 것
라이올 왓슨이라는 미국인 과학자가 ‘100번째 원숭이 현상’이라고 명명한 내용은 ‘비즈니스 교양’이라는 책에 잘 정리되어 있다. 그 내용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950년대 일본 미야자키현의 고지마莘島라는 무인도에서 과학자들이 원숭이들의 행태적 특성을 연구하기 위해 원숭이 집단의 행동을 관찰하는 실험을 수행했다.
어느 날 과학자들이 모래톱에 고구마를 던져 놓았다. 원숭이들은 고구마에 몰려들었다. 문제는 고구마에 묻어 있는 모래였다. 그냥 먹는 놈도 있었고 머리를 쓴 녀석도 고작해야 툭툭 털어먹는 정도였다.
18개월짜리 암컷 원숭이 ‘이모’가 우연히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다. 바로 고구마를 씻어먹는 것. 이모는 제 어미에게 이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친구들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또 어미에게 이 새로운 방식을 일러줬다. ‘고구마 씻어먹기’는 빠르게 퍼져갔지만, 수년이 지났을 때도 섬에는 모레를 털어먹는 것 밖에 모르는 원숭이들이 훨씬 더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100마리째 원숭이가 고구마를 씻어먹는 방법을 익혔을 무렵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섬에 있는 원숭이 전부가 고구마를 씻어먹을 줄 알게 된 것이다.
박태일 저, ≪비즈니스 교양≫, 도서출판 토네이도, 2007, pp.29~30에서 인용
라이올 왓슨은 고구마를 씻어먹는 원숭이의 숫자가 100마리에 도달했을 때, 원숭이 집단 전체에 ‘고구마 씻어먹기’라는 행동이 순식간에 전파되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현상을 ‘100번째 원숭이 현상’으로 정의했다.
동물학자들은 ‘100번째 원숭이 현상’이 원숭이의 세계뿐만 아니라 인간사회에서도 자주 일어난다고 말한다.
내가 라이올 왓슨이 말한 ‘100번째 원숭이 현상’을 거론하는 이유는 그것이 혁신의 생리를 잘 대변해주기 때문이다.
혁신에 도전하는 대부분의 리더들은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혁신을 완성시키려고 안간 힘을 쓴다. 자기 임기 내에 추진한 혁신을 반드시 자신의 공적功績으로 챙기려고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혁신에 대한 실패의 싹은 거기서부터 자라난다. 제 아무리 바느질이 급하다고 해서 실을 바늘 끝에 묶어서 쓸 수는 없다.
음식도 서둘러 먹게 되면 체하기 쉽다. 혁신도 마찬가지다. 혁신도 낯선 세계에 도전하는 것이니만큼 혁신주체와 위험선호자risk-lover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위험 중립 자, 위험기피자등)들은 혁신의 추이과정을 지켜보면서 관망하려는 자세를 보인다.
아무리 좋은 의미에서의 혁신도 일정수준 이상의 지지자들이 확보되지 않으면, 그것이 조직 전체의 문화나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지 못하고 부동浮動의 블랙홀에 빠지고 만다.
앞의 사례에서 ‘이모’ 원숭이의 혁신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그것을 지지하는 100마리의 원숭이가 필요했다. 즉 원숭이 세계에서 혁신 성공의 임계 치臨界値는 100마리였다.
인간 세계에서 조직 혁신의 성공을 위해 필요한 임계 치는 원숭이들의 그것보다 훨씬 더 큰 숫자가 될 것이다. 따라서 혁신주체들은 조급한 마음을 억누르면서 혁신 성공에 필요한 임계 치를 확보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때, 혁신주체들이 지녀야 할 가장 바람직한 자세는 ‘내 임기 중에 혁신의 과실果實을 따 먹겠다’는 생각보다는 ‘후임자後任者를 위해서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마음가짐이다.
혁신주체들이 해탈解脫의 경지에 오른 선승禪僧의 자세로 임해야 혁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결국 혁신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버려야 얻는다.’는 얘기도 혁신주체들이 되새겨보아야 할 명언 중의 명언이다.
미국인들이 고 레이건 대통령을 존경하는 이유
미국인들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정치지도자 가운데 배우 출신의 고故 레이건 대통령이 있다.
그는 탁월한 감성지수(EQ)로 자신의 결점을 보완하면서 1980년대 미국의 경제개혁을 진두지휘했던 혁신가였다.
1980년대의 미국 경제는 한마디로 칠흑 같은 어둠 그 자체였다. 거의 모든 산업분야에서 미국 기업은 일본 기업들에게 선두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게다가 노사문제도 사상 최악의 상황이었다. 법전法典에도 나오지 않는 ‘떼 법’이 미국의 산업계를 강타하고 있었다.
레이건은 불면不眠의 밤을 보내면서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그는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부통령(현 조지 워커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아버지)을 개혁반장으로 임명한 후, 원칙과 국법에 입각한 국정개혁(경제, 노동, 국방, 재정 등)을 8년에 걸친 자신의 임기 내내 줄기차게 추진해나갔다.
혁신주체들의 조급성이나 부조리不條理(부조리와 불법은 다른 개념이다.)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실추된 미국의 경쟁력을 되찾기 위해 ‘블루리봉위원회’라는 씽크-탱크를 구성해서 미국 정부와 기업이 실천해야 할 전략을 짜도록 했다.
또 1980년대 초, 항공 관제사들이 불법파업을 일으키자 그는 대체 고용권을 발동시켜 그들 전원을 해고하는 단안을 내렸다.
또 그와 유사한 불법파업에 대해서는 시종일관 강경 기조를 유지했다. 그러자 미국의 불법 파업 건수도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한편, 공화당의 레이건 대통령이 추진했던 혁신 조치가 눈부신 성과로 나타난 것은 민주당의 대통령이었던 클린턴 정부 때였다.
즉 공화당이 심은 사과나무에서 탐스런 사과를 따 먹은 것은 민주당이었던 것이다. 그게 바로 혁신의 속성이다. 그런 의미에서 클린턴은 한 마디로 억세게 운이 좋은 사내였다.
그의 정적政敵이었던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와 레이건이 힘들게 가꿔 놓은 대정원에서 평화롭고 행복한 만찬을 마음껏 즐겼으니 말이다.
게다가 미국의 경기景氣가 최고로 호황이었던 탓에 클린턴이 저지른 부적절한 ‘지퍼-게이트’마저 대다수 국민들이 관대하게 봐주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수많은 미국인들이 클린턴 정부 때의 ‘신경제’ 현상이 클린턴의 리더십이 아니라 레이건의 혁신 조치에서 비롯된 것임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생전의 레이건이 알츠하이머병으로 고통 받고 있을 때, 어느 회의장에서 그의 대통령 재임시절 모습이 대형 화면에 비치자 장내場內의 사람들이 모두 기립해서 거수경례를 보내는 모습을 보고, 나는 큰 감명을 받았다.
또 몇 년 전, 미국인들은 새로 건조한 최신예 핵추진 항공모함의 이름을 ‘레이건호’라고 명명함으로써 ‘팍스-아메리카나’를 위해 인기 없는 혁신조치를 단행했던 레이건에 대해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나는 레이건 대통령에 관한 책을 읽고 자료를 분석하면서 우리나라의 대통령, 우리나라의 기업 CEO, 우리나라의 대학 총장, 우리나라의 지자체 장長들도 고 레이건 대통령과 같은 자세로 수준 높은 혁신을 추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지난 10여 년 동안, 내가 혁신에 대한 공부를 해오면서 하나의 신념으로 굳어진 것은 ‘진정으로 버려야만 얻을 수 있는 게 혁신이다.’라는 사실이다.
부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얻을 수 있는 참 지도자, 훌륭한 리더의 출현을 간절하게 기도한다.
김덕수 교수 |
충북대학교 경제학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 석박사과정을 이수하고 1995년도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동안 한국증권거래소 조사부, 고려대학교 강사, KAIST 경제분석연구실 선임연구원, 일본 과학기술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위원, 중등임용고사 출제위원, 국무총리실 소속 산업기술연구회 정부출연구소 기관평가위원, 자유민주연합 혁신위원회 위원장, 대구교통방송 경제해설위원, 공주대학교 기획연구부처장을 역임했다.
현재 공주대학교 교수회장 겸 사범대학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생각을 달리하면 희망이 보인다>, <김덕수 교수의 통쾌한 경제학>, <김덕수 교수의 경제 IQ높이기>, <김덕수 교수의 경제 EQ높이기>, <맨주먹의 CEO 이순신에게 배워라>, <한국형 리더와 리더십>, <게임의 지배법칙으로 자기를 경영하라> 등 다수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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