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민들 가운데 농심(주)이 만들어 판매하는 ‘새우깡’을 모르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을 것이다.
1971년 초, 새우깡이 시판된 이래로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어린이들과 어른들은 TV에서 수시로 방영되었던 “손이 가요, 손이 가. 새우깡에 손이 가~”라는 로고송을 되새겨보면서 새우깡을 열심히 먹고 있다.
오늘도 농심(주)의 새우깡은 아이들의 공부방이나 오락실에서, 어른들이 즐겨 찾는 생맥주 집이나 노래방에서 간식거리나 술안주로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
장수식품이 되어버린 새우깡
새우깡은 과거 서울 종로에서 오랫동안 명성을 떨쳤던 ‘이명래 고약’보다도 훨씬 더 장수長壽를 누리고 있는 식품 가운데 하나다.
새우깡이 그렇게 된 데는 브랜드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최고의 맛을 내기 위해 도전했던 농심(주)의 신춘호 회장(이하 신 회장)과 연구진의 피나는 노력 때문이다.
농심(주)이 설립되었던 1965년부터 1970년까지는 라면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인식이 부족하여 시장규모 자체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서도 국내 라면시장은 라면 제조회사들 간에 경쟁이 매우 치열했다. 1971년 당시, 농심(주)의 연간 총매출액은 현재 농심(주)의 1주일 매출액 수준인 203억에 불과할 정도로 판매가 부진했다. 이때, 농심(주)의 신 회장은 중대결심을 하게 된다. 라면의 고품질 시대를 선언한 것이다.
보릿고개가 해소되지 않은 1970년 당시, 소고기는 잔치 때나 명절에만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그런데 농심(주)이 국내 최초로 소고기 라면을 개발해서 별식 중의 별식으로 큰 각광을 받은 것이다.
다른 사람이 시도하지 않는 일을 맨 먼저 추진하는 사람은 블루오션을 의미하는 '온리 원Only one'의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으로서 아주 크게 성공할 확률이 높다. 바로 농심(주)이 그랬다.
국내 최초로 개발한 소고기 라면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농심(주)의 사세社勢는 호전되었고, 그런 분위기는 곧 새우깡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국내산 새우를 주원료로 결정한 농심(주)는 최고의 맛과 품질을 얻기 위해 당시의 사세로 볼 때, 가히 혁명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양질의 재료를 아낌없이 투입했다.
혁명은 재료의 투입량에서 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일어났다. 그 당시 과자를 만들 때는 기름에 튀겨내는 방법이 전부였다.
그러나 농심(주)는 새우깡을 만드는데 기름에 튀기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가열된 소금의 열을 이용해서 튀겨내는 일명, 파칭parching공법을 적용해서 새우깡의 독특한 맛을 창출하는데 성공했다.
특히 농심(주)는 일반적인 파칭 공법과는 전혀 달리 식물성 기름인 팜유를 뿌려준 상태에서 파칭하는 기발한 기술을 창안해서 고소하면서도 짭짤한 새우깡의 맛을 창조해냈다.
개발부서 연구진들은 연구에 몰두하느라 밤늦게 까지 일하는 것은 물론이고 날밤을 새우는 일도 잦았다.
더욱이 새우깡을 개발하기 위해 사용된 밀가루 양이 4.5톤 트럭으로 80대분 정도라고 하니, 1970년의 국내 경제상황을 고려할 때 이것은 엄청난 양이 아닐 수 없다.
신 회장의 창의성과 ‘새우깡’ 브랜드
전통적으로 한국 사람들에게 ‘깡’이라는 용어가 주는 어감은 그리 좋지 않다. ‘깡’으로 시작하는 단어나 끝나는 단어들이 거의 대부분 좋은 의미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군대에서 유격훈련을 받을 때 주로 사용하는 ‘악으로 깡으로’, ‘깡패’, ‘깡다구’, ‘와리깡(이것은 암달러상이 암달러를 환전할 때 적용하는 할인율을 의미하는데, 일본에서는 ‘와리깡’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은 할인을 의미하는 ’와리히끼‘가 존재할 뿐이다. 한마디로 ’와리깡‘은 정체불명의 외래어라고 말할 수 있다)’과 같은 단어를 연상해 보면 내 주장이 그리 틀리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우깡은 ‘깡’이라는 낱말을 붙여 성공을 거두었으니, 필자의 눈에는 아주 기이한 현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새우깡에 얽힌 비밀을 풀어보기 위해 아주 오래전에 농심(주)의 고위 경영자를 만나서 물어본 적이 있다. 그분으로부터 전해들은 내용을 토대로 새우깡에 얽힌 비밀을 풀어보았다.
본래 새우깡의 명칭은 ‘새우랑’으로 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랑’이라는 용어는 영어의 ‘and(예: 너랑 나랑 결혼하자!)'와 같은 의미를 갖고 있는데, 새우깡이 새우가루와 밀가루로 만들어진 제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당시 농심(주)의 신 회장 딸이 유치원에 다녔는데, 그 아이가 ’아리랑‘이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아리깡 아리깡’이라고 발음을 했던 모양이다.
신 회장은 딸의 발음을 듣고 어린이들이 연음인 ‘랑’ 발음보다는 경음인 ‘깡’ 발음을 쉽게 한다는 데 착안하여 ‘새우랑’을 ‘새우깡’으로 새롭게 명명했다고 한다.
바로 이 점에서 우리는 신 회장의 창의성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새우깡’의 주요 고객이 어린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비록 ‘깡’이라는 단어가 그리 좋은 이미지를 갖지 않았지만 고객인 어린이들이 부르기 쉬운 용어라면 그 위험마저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신 회장의 고객사랑 정신이 자신이 애써 만든 신제품에 ‘깡’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모험과 도전을 감행했던 것이다.
그런 점들 때문에 나는 평소 농심(주)의 신 회장을 아주 훌륭한 CEO라고 평가하고 있다.
또 기업가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어린이 고객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생각하고 판단했던 신 회장의 고객 제일주의 정신이 결국 ‘새우깡’의 신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 후, ‘새우깡’이 한국의 스낵 문화를 선도하면서 다양한 ‘깡’시리즈(예: 고구마깡, 양파깡, 감자깡 등)가 출현하게 되었고, 그들 제품 또한 농심(주)의 사세 확장에 효자품목으로 크게 기여한 바 있다.
한번 록인lock-in된 것은 바꾸기 어렵다!
언젠가 슈퍼마켓에 가서 아이들에게 줄 과자를 사다가 우연히 ‘꽃게랑’이라는 스낵을 발견한 적이 있다.
1971년 농심(주)의 신 회장이 온갖 고민을 하다가 포기했다는 ‘랑’자가 스낵류 시장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는 것 같아 매우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꽃게랑’이 시중에서 대박을 터뜨렸다는 얘기를 아직까지 들어보지 못했다. 농심(주)이 만들었다면 꽃게랑이 다른 스낵 류 들보다 더 맛있게 만들려고 노력했거나 최소한 비슷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소비자들이 새우깡을 꽃게랑보다 더 즐겨 찾는 이유는 이미 새우깡이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록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엇이든 처음이 중요한 것이다. 이는 마치 첫사랑, 첫 아이, 첫 입학, 첫 직장 등을 평생 동안 못 잊는 것과 마찬가지다.
요즘 공주대가 안팎으로 무척 시끄럽다. 그 주된 이유는 현 총장이 이전의 다른 총장들에 비해 아주 독특한 행동양식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현 총장은 이전의 다른 총장들에 비해 나이가 젊은 편이다. 그런 만큼 ‘개혁의지가 강하고 추진력이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젊은 탓에 세상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고집이 세며, 주변 사람들과 타협하는 협상 스킬skill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아마도 그런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은 현 총장이 대학본부의 천안이전, 교명변경, 대학 구조조정(안)을 두고 공주시민들과 끊임없는 마찰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새우깡과 꽃게랑이 시사하는 것!
나는 새우깡과 관련하여 우리 공주대의 교명변경 문제를 언급하고자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공주지역 출신도 아니고, 공주대(또는 공주사대) 출신도 아니다.
따라서 교명변경에 대해 가치중립적인 입장에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우리 공주대가 예산과 천안의 2년제 전문대학과 통합해서 종합대학교를 만든 이상, ‘공주대’라는 기존 대학 명칭의 개정 논의는 전향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문제는 ‘새로운 교명이 과연 공주대라는 브랜드 가치를 뛰어넘을 수 있느냐?’라는 점이다. 만약 그런 교명을 찾아낼 수 있다면, 나부터 발 벗고 나서서 공주시민들을 설득하는 일을 할 생각이다.
그러나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저 ‘공주’자만 떼어 버리면 된다는 식의 이분법적 사고思考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반대한다. 그 이유는 새우깡에서 논의한 ‘록인lock-in' 현상이 교명변경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국민들에게 록인된 공주대학교의 이름은 ‘공주사대’다. 나는 강연 때문에 전국의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데, 아직까지도 어떤 분들은 내게 “공주대학교와 공주사대가 같은 대학이냐, 아니면 다른 대학이냐?”라고 질문한다.
다소 불쾌하고, 황당한 질문이지만 일반 국민들이 그렇게 혼동을 하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공주대의 교수, 행정직원, 학생들의 노력부족 때문이다.
만약 공주대의 교직원들과 학생들이 각고刻苦의 노력을 기울여서 국내 TOP 5 대학 안에 들었다면, 일반 국민들은 과거 단과대학이었던 공주사대가 종합대학교인 공주대로 발전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했을 것이다.
교명만 바꾸면 대학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바꾸는데도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하물며 대학의 이름을 바꾸는 것은 개인의 이름을 바꾸는 것보다 수천 배의 신중을 기해야 옳다.
교명변경에는 천문학적 숫자의 홍보비용이 소요되는 데다 그 효과마저 가늠하기 어렵다.
더욱이 대학의 이름을 잘못 바꿔서 대학의 기존 이념이나 아이덴티티가 손상될 경우, 그 피해는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대학 자체가 문을 닫게 되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만약 그런 상황이 일어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심각하게 고려해 보아야 한다.
나는 공주대의 현 총장과 대학구성원, 그리고 공주시민들에게 진심으로 당부 드린다. 총장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좋은 대학 이름을 찾는데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
만약 ‘공주’를 뛰어넘을 수 없는 좋은 이름이 없다면, 교명변경은 장기연구과제로 넘겨서 시간적 여유를 두고 좀 더 깊은 연구를 시도했으면 좋겠다.
대학구성원들 역시 총장의 선거공약을 빌미로 총장에게 불필요한 심리적 압박을 가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공주시민들 역시 총장의 발언이나 태도에 지나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지 말고 한발 물러나서 총장이 추진하는 일을 지근거리에서 관망해기를 바란다.
공주대는 총장의 개인 소유물이 아니다. 물론 대학구성원이나 공주시민들의 소유물도 아니다.
공주대는 총장, 대학구성원, 공주(천안, 예산)시민들이 함께 가꾸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우리의 소중한 일터요, 보금자리요, 영원한 안식처다.
앞으로 공주대는 새우깡이 걸어온 것과 같은 장수식품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 나가야 한다.
멀쩡하게 잘나가던 대학이 무분별한 사람들의 순간적인 판단착오로 꽃게랑과 같은 존재로 전락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이 문제에 대한 우리 모두의 냉철한 현실인식을 간절하게 기도한다. 요즘 나는 공주대 본부 옥상 건물의 교기校旗만 쳐다보면 눈물이 난다.
김덕수 교수 |
충북대학교 경제학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 석박사과정을 이수하고 1995년도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동안 한국증권거래소 조사부, 고려대학교 강사, KAIST 경제분석연구실 선임연구원, 일본 과학기술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위원, 중등임용고사 출제위원, 국무총리실 소속 산업기술연구회 정부출연구소 기관평가위원, 자유민주연합 혁신위원회 위원장, 대구교통방송 경제해설위원, 공주대학교 기획연구부처장을 역임했다.
현재 공주대학교 교수회장 겸 사범대학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생각을 달리하면 희망이 보인다>, <김덕수 교수의 통쾌한 경제학>, <김덕수 교수의 경제 IQ높이기>, <김덕수 교수의 경제 EQ높이기>, <맨주먹의 CEO 이순신에게 배워라>, <한국형 리더와 리더십>, <게임의 지배법칙으로 자기를 경영하라> 등 다수가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