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장-독주를 강권하는 고약한 대학사회

2007. 5. 26. 23:24아름다운 글

27장-독주를 강권하는 고약한 대학사회
김덕수 교수의 파워 칼럼
2007-05-25 08:33:36 function sendemail(w,h){ var sWinName = "emailarticle"; var cScroll = 0; var cResize = 0; var cTool = 0; var sWinopts = 'left=' + ((screen.width-w)/2) + ', top=' + ((screen.height-h)/2) + ', width='+w+',height='+h+', scrollbars='+cScroll+', resizable='+cResize; window.open('./?doc=function/mail.php&bo_table=column&wr_id=216',sWinName,sWinopts); } function sendprint(){ var sWinName = "printarticle"; var cScroll = 1; var cResize = 1; var cTool = 1; var sWinopts = 'left='+0+', top='+0+', width='+720+', scrollbars='+cScroll+', resizable='+cResize; window.open('./?doc=function/print.php&bo_table=column&wr_id=216',sWinName,sWinopts); }

 

신입이라는 단어만큼 우리를 흥분시키고 가슴 설레게 하는 것도 없다. 신입생, 신입사원, 신입회원... 등. 그런데 퍼스트first, 꿈, 희망, 비전, 열정, 새로운 각오를 연상하게 하는 ‘신입’이란 단어가 그놈의 ‘술’과 해후邂逅를 하면, 그 깨끗하고 신선한 이미지가 한순간에 망가지고 만다. 신입생 신고식이 대표적인 사례다.

올해도 변함없이 주요 일간지와 TV 방송은 대학가의 일그러진 신입생 신고식 모습을 연이어 보도했다.

남녀 신입생들에게 술을 강제로 먹이고, 얼차려와 같은 군대식 기합으로 육체적인 고통을 안겨주었으며, 팬티 바람으로 대학 정문 앞에 서 있게 하는 추태醜態가 적나라하게 공개되었다.

더욱이 술에 취해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여자 신입생들을 상대로 성추행까지 저질렀다는 보도 앞에서 딸을 둔 학부모들은 망연자실했을 것이다.

시어머니를 욕하면서 시어머니를 닮아가는 사회

이러한 보도에 대해서 신입생 신고식을 주관하는 해당 학과의 선배들은 겉으로는 자숙하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강한 불만을 토로한다.

“우리들은 단순히 먹고 마시고 취하기 위해서 신입생 신고식을 하는 게 아닙니다. 그동안 신입생들이 입시지옥에서 느꼈던 온갖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 보내고, 선배들과 끈끈한 정을 쌓는데 그 주된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거시기하게 신입생 신고식을 나쁜 쪽으로만 바라보지 마십시오. 기성세대인 당신들로 신입생 신고식을 통과의례로 여기지 않았습니까?”라고 말이다.

대학 새내기들의 신입생 신고식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신입생 신고식은 우리나라에 대학이 생긴 이후부터 지금까지 반복적으로 이어져 내려온 우리의 문화이자 작은 역사다.
따지고 보면, 지금 젊은이들의 일탈된 신입생 신고식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차는 학부모들도 20~30년 전의 학창시절에는 타락한 신입생 신고식을 주관했던 주인공들이었다.

“요새 젊은 것들은 글러 먹었어. 저것들이 언제 커서 사람 구실을 할꼬?”라는 말은 100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도 대학생인 자기 자식들에게 내뱉었던 말이다.

문제는 ‘왜 이렇게 일그러진 신입생 신고식이 조금도 개선되지 않은 채, 100년 넘게 지속되어 왔는가?’라는 점이다.

일제식민통치와 군사독재시대가 종식된 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신입생 신고식에 대한 우리 젊은이들의 의식수준은 사각모와 망토로 한껏 멋을 부리며 똥 폼을 잡던 ‘이수일과 심순애’의 시절에 머물고 있다.

특히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군대문화를 그렇게 싫어하는 젊은이들이 그것을 신입생들에게 강요한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그 고약한 심보의 근원은 무엇인지? 제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그에 대한 해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적어도 의미 있는 신입생 신고식이 되려면, 학과 선배들과 신입생들 간에 유익한 정보가 소통되고 공유되는 만남의 장이 되어야 한다.

학과 선배들이 대학 물정에 어두운 신입생들에게 기숙사 생활방식, 취업준비 요령, 도서관 이용법, 수강신청 방법 등을 친절하게 안내하고 설명해주는 멘토링의 자리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신입생 신고식에 술이 등장하는 이유는 무얼까?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신입생 신고식은 멘토링의 자리가 되지 못한다. 술이 그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학과 선배들은 학번의 끗발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알려주는 대가로 술을 하사下賜하면서 고교 3년간 수험준비로 고생한 후배들을 위로(?)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 명분에 불과할 뿐이다. 실제는 과거 자신들이 선배들에게 당했던 것을 그대로 갚아주면서 학과의 전통(?)을 이어가려는 일종의 보복심리가 복병伏兵처럼 숨겨져 있다.

그러면 왜 학과 선배들이 신입생들에게 술을 하사할까?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학과 선배들이 맨 정신으로 낯선 신입생들을 함부로 다루기에는 왠지 어색하고 민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과 선배들은 고참으로서의 이미지 변신을 위한 필수에너지로서 술을 찾게 되는 것이다.

평소 소심해서 여학생들에게 말도 못 붙이던 선배도 일단 술이 들어가서 어느 정도 체내에 알코올 기운이 퍼지면 제법 객기客氣를 부리면서, 까칠한 성격을 한껏 발휘한다.

더욱이 예비역 선배들은 24개월의 군 복무기간동안 배우고 익힌 폭탄주 제조비법과 음주가무 실력, 그리고 자신들이 직접 체험한 각종 기합사례들을 활용해서 신입생들을 혹독하게 굴리는 유격조교의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다.

학과 선배들이 이러한 행동양식을 보이는 것은, 그들이 어릴 적부터 제대로 노는 것, 즉 휴-테크를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대로 논다는 것의 핵심은 혼자 있어도 심심하지 않게 지낼 수 있고, 둘이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을 의미한다.

즉 노는 것의 핵심은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에 있다.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입해서 호화찬란하게 노는 게 잘 노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마을 앞 슈퍼마켓의 파라솔 아래에서 맥주 한잔을 나누더라도 오랫동안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며 정겹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잘 노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유아시절, 유치원시절,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심지어는 박사과정에 이르기까지 공부(그것도 창의적인 공부가 아니라 5지 선다형 문제에서 그럴듯한 정답을 고르는데 익숙한 암기형 공부가 전부였다.)할 것만 강요받고 자랐다.

학생들에게 잘 노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가정, 학교, 학원에서 절대적인 금기사항이었고, 부모나 교사 역시 잘 노는 방법에 대해 함구緘口로 일관했다.

따지고 보면, 그들 역시 과거 학창시절에 잘 노는 방법을 학습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가르칠만한 여력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학생들은 다른 사람들과 편안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소양과 능력을 쌓지 못한 채, 헛나이만 먹으며 어른아이로 성장하고 말았다.

더구나 ‘한두 과목만 잘해도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모 인사가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에 취임해서 시대착오적인 교육정책을 강력하게 밀어붙인 결과, 우리 학생들의 지적 교양수준은 바닥을 헤매고 있다.

이것은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사회과목, 역사과목, 과학과목을 공부하지 않아도 대학에 갈 수 있는데, 어느 누가 그런 과목에다 자신의 열정을 쏟겠는가?

그런데 다른 사람들과 긴 시간을 함께 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을 잘하기 위해서는 그런 과목들에 대한 지식과 교양이 전제되어야 한다.

젊은 학생들은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얘깃거리가 매우 빈곤하기 때문에, 낯선 사람들과 맨 정신으로 마주보는 것을 일종의 고문拷問처럼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한 심리적 위기의식을 모면하기 위해서 필요로 하는 것이 다름 아닌 술이다. 술에 취하면 낯선 사람끼리 눈을 마주치는 것쯤은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신입생 신고식에 술이 필수품으로 등장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이다.


학습된 무기력증과 사회적 재앙


해마다 신입생 신고식으로 인해 사망하는 학생들의 얘기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모두가 다 술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 술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도 제각각이다. 그런데도 신입생 신고식에서는 거의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다. 강한 연대의식을 자랑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연대의식의 요구가 사람 잡는 사회적 재앙임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술을 잘하는 신입생이든, 술을 전혀 못하는 신입생이든 선배들이 따라주는 술은 무조건 다 마셔야 한다는 강압적인 분위기 때문에, 신입생들은 목숨을 걸고 술을 들이켜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술을 전혀 못하는 여학생들은 술에 취해 제 몸 하나조차 가누지 못하다가 성추행이나 성폭행의 대상으로 전락하기도 하고, 술에 약한 남학생들은 과음過飮이나 그에 따른 2차 요인으로 사망(예: 심장마비, 교통사고 등)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난다.

한편, 독주毒酒를 강권强勸하는 신입생 신고식의 분위기는 예비역 선배들에 의해 주도되는데, 문제는 그들이 24개월 동안 군대에서 ‘학습된 무기력증’에 노출된 사람이라는 점이다.

잘 알다시피 군대에서는 주로 명절날에 부대 회식이 벌어진다. 그런데 졸병들은 회식 분위기를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미친 듯이 춤을 춰야 한다.

자기 마음은 기쁘지도 즐겁지도 않은데, 고참병들의 하늘같은 명령이기 때문에 오버액션을 해야 하는 게 졸병들의 서글픈 운명이다.

만약 옆 소대나 중대에 비해 회식 분위기가 썰렁하면, 혹독한 얼차려를 받아야 하는 졸병들로서는 어찌해볼 방법이 없다. 광란의 짓거리를 할 수밖에...

또 고참병이 따라주는 술은 그것이 독주이든, 순한 막걸리이든 간에 무조건 퍼팩트하게 마셔야 한다.

만약 술을 못하기 때문에 사양이라도 해서 모처럼의 회식 분위기를 깨면, 천하의 역적으로 몰려서 남은 군대생활이 피곤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졸병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어쩔 수 없이 조직의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야만 하는 무기력을 학습하게 된다.

이렇게 학습된 무기력증을 체험하고 사회에 나온 예비역 학생들은 학창시절에는 자신의 후배들을 상대로,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 후배 직원들을 상대로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독주를 강권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행하는 독주의 강권이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범죄행위가 되는 지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전통은 구습을 깨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선후배의 인연을 맺는 것처럼 아름다운 일은 없다. 따라서 신입생 신고식은 선후배간에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맺어나가는 첫 만남의 장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인간관계의 성공을 위한 전제조건은 나와 다른 사람의 차이를 기꺼이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술은 기호식품으로서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좋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쥐약보다도 더 보기 싫은 대상이다.

물론 좌중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술이 필요한 것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강요하는 것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다.

각자가 알아서 자신의 취향대로 마시도록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독주를 강권하는 사회는 미개사회이고, 그것을 주문하는 사람은 사회적 진화가 덜된 원시인이다.

둘째, 신입생 신고식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어려움까지도 한번 정도 생각해보는 계기로 삼으면 좋을 것 같다.

요즘에는 거의 모든 고등학교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지만, 그래도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선택받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자신이 선택받은 사람이니만큼, 선배와 후배가 함께 사회의 그늘지고 어두운 곳을 찾아가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대학입학의 소중한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그렇게 되면 선배와 후배 간에 인간적인 정情도 깊어지고 상호 이해의 폭도 넓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냉철한 두뇌와 따뜻한 심성’은 그런 과정을 거쳐야만 제대로 정립될 수 있다.

셋째, 생면부지生面不知의 선배와 후배가 한자리에서 상견례를 나누면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덕담을 들려주고, 대학생활에 길잡이가 될 수 있는 유익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멘토링의 장이 되도록 노력했으면 한다.

그런 다음, 선배와 후배가 조를 짜서 운동경기(예: 등산, 농구, 피구 등)를 한다거나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른다거나 공동 답사를 떠나는 등의 행사를 하면 어떨까 싶다.

그런 것들은 훗날 모든 사람들에게 소중한 추억거리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더 더욱 좋을 것 같다.

이제 우리 사회의 신입생 신고식은 새롭게 진화되고 발전되어야 한다. 시대감각에 맞도록 잘못된 것은 개선하고, 새롭고 좋은 것은 과감하게 수용해서 좀 더 의미 있고 아름다운 신입생 신고식으로 반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빛나는 전통을 수립하는 것이다.

조선 백자를 바라보라. 조선의 도공들이 고려청자를 답습하면서 도자기의 전통을 수립했는가?

아니다. 고려청자를 뛰어넘는 새로운 기법을 창조해 냄으로써 조선 백자를 발전시켰고 그를 통해 조선의 빛나는 도자기 전통을 수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의 신입생 신고식도 마찬가지다. 우리 젊은 학생들의 지혜와 새로운 인식전환을 기대해 본다.




    김덕수 교수
충북대학교 경제학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 석박사과정을 이수하고 1995년도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동안 한국증권거래소 조사부, 고려대학교 강사, KAIST 경제분석연구실 선임연구원, 일본 과학기술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위원, 중등임용고사 출제위원, 국무총리실 소속 산업기술연구회 정부출연구소 기관평가위원, 자유민주연합 혁신위원회 위원장, 대구교통방송 경제해설위원, 공주대학교 기획연구부처장을 역임했다. 현재 공주대학교 교수회장 겸 사범대학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생각을 달리하면 희망이 보인다>, <김덕수 교수의 통쾌한 경제학>, <김덕수 교수의 경제 IQ높이기>, <김덕수 교수의 경제 EQ높이기>, <맨주먹의 CEO 이순신에게 배워라>, <한국형 리더와 리더십>, <게임의 지배법칙으로 자기를 경영하라> 등 다수가 있다

 

 

 

< 공주뉴스=김덕수시민 기자/ news@gongju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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