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는 휴-테크의 문제와 관련된 칼럼을 10개 정도 쓸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지도편달을 바랍니다.
거미의 휴-테크 전략을 벤치마킹하자!
지식정보화 사회의 화두는 단연 창의력이다. 산업화 사회에서는 노동하는 인간인 호모 파베르homo faber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지식정보화 사회에서는 일을 취미나 놀이처럼 하는 인간인 호모 루덴스homo ludens가 성공하는 시대다.
이는 ‘놀이가 곧 일이 되고, 일이 곧 놀이가 되는 것’이 지식정보화 사회의 보편적 현상임을 시사한다.
또 노하우know-how가 위력을 발휘했던 산업화 사회에서는 시간이 곧 돈이었기 때문에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성공했다.
그러나 노웨어know-where와 노와이know-why가 중시되는 지식정보화 사회에서는 잡다한 정보 더미 속에서 최적의 정보만을 선별해서 새로운 지식과 지혜로 변환시켜 나갈 수 있는 창의적 인재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동안 한국인들은 "일개미처럼 쉬지 않고 일하지 않으면 엄동설한嚴冬雪寒때 불행해질 것이다"라는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를 신봉하면서 산업전사로서의 고단한 삶을 살아왔다.
사람들은 그런 고생 속에서도 미래만큼은 한없이 밝을 거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IMF 금융위기는 앞만 보며 죽어라고 일만 했던 근면 성실한 사람들의 미래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주었다.
조직을 위해 몸 받쳐 충성했던 40~50대 가장家長들이 구조조정의 0순위로 밀려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것이다.
IMF 금융위기는 우리들에게 일 중독자의 비참한 말로末路가 어떤 모습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향후 일하는 방식의 대전환을 도모하지 않는 한,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질 수 있음을 경고했다.
필자는 이럴 때일수록 거미의 생존기술과 휴-테크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한다.
거미처럼 생각하고 행동하자!
휴-테크란, 주어진 휴식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기법을 의미한다. 휴-테크의 달인達人인 거미는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쉬면서 보낸다.
거미가 거미줄을 촘촘하게 치는 것은, 한 마리의 곤충이라도 더 많이 사냥하기 위해서다.
일단 거미줄을 친 거미는 그 끝자락에 가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는 습성이 있다. 그러다가 싫증이 나면 자신이 쳐놓은 거미줄 주위를 순찰하면서 거미줄의 손상여부, 거미줄에 걸려든 먹잇감의 존재유무 등을 체크한다.
거미에게는 조급함도 없고, 일에 대한 강박증도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어떤 속도로 달려가든 거미는 자신을 세상의 흐름에 맞추려고 발버둥치지 않는다.
어쩌면 세상이 자신의 사이클에 맞춰주길 바라며 저단기어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한마디로 유유자적한 선비의 멋진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충분한 휴식을 즐긴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노동생산성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그것은 휴식에 내재되어 있는 자기반성과 재미fun가 인간의 창의력을 증진시켜주기 때문이다.
자기반성이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이 아닌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해나가는 사색의 과정’ 또는 ‘자신을 돌아보면서 자기 자신과 진지하게 대화할 줄 아는 능력’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자기반성을 통한 자기성찰에 성공할 경우,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며, 내가 지향하는 최종 인생 목표는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깊은 이해를 하고 있으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에 비해 인생을 값지게 살아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성공할 가능성도 높다.
또한 휴식은 일상의 무게를 벗고 일탈逸脫의 재미(또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충분한 수면睡眠이나 낯선 곳으로의 여행,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몰입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사회적 책임과 의무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배우며 사색하는 여유와 재미를 제공해준다.
일례로 휴식은 아들, 남편, 아버지들을 고단한 사회적 역할로부터 해방시켜 자연인 ○○○로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 남성들은 ‘개미 콤플렉스’의 블랙홀에 빠져 그런 일탈의 자유와 행복을 경험하지 못했다. 주중에는 ○○주임, ○○대리, ○○과장, ○○팀장, ○○이사로서의 책무가 그들의 어깨를 짓눌렀고, 주일에는 부모에게 신경을 써야 하는 아들로서의 의무가 그들의 휴식을 빼앗았다.
그리고 여름 한철에만 집중된 휴가 때에는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사회적 의무를 완수하기 위해서 그들은 주차장이 되어 버린 고속도로에서, 유원지에서, 놀이기구의 승차 순번을 기다리는 행렬 속에서 작열하는 태양과 지루한 기다림, 바가지 상혼商魂과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인간답게 살려면 일과 휴식에 대한 시간배분 과정에서 세련된 균형감각을 가져야 한다.
거미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로부터 많은 지혜를 차용借用해 올 수 있다. 거미는 자신의 내면에다 토끼와 거북이, 개미와 베짱이를 함께 기르고 있다.
일을 할 경우, 거미는 열정적인 자세로 자신에게 주어진 미션을 100% 수행하는 개미의 장점은 본받지만, 앞뒤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일만 하는 개미의 단점은 미련 없이 용도폐기 한다.
게다가 거미는 아무 일이나 함부로 하지 않는다. 베짱이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예: 거미줄을 이용한 먹이사냥)를 선택한 다음, 그곳에다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집중시켜 최고의 성과를 도출해낸다.
일에 관한 한, 거미는 효율성의 화신化身이다. 그러나 거미가 휴식을 취할 때는 낮잠에 몰입했던 토끼처럼 자신의 휴식에만 몰두하면서 거북이처럼 느긋한 마음으로 잘 쉰다.
거미가 다른 곤충들에 비해 창의력이 뛰어난 것도 그 때문이다. 휴식에 관한 한, 거미는 퍼지적fuzzy 사고의 화신이다.
혼다 소이치로 회장과 김우중 회장의 차이
필자는 휴식과 관련하여 일본이 자랑하는 혼다(주)의 창업자인 고故 혼다 소이치로 회장과 한국기업의 세계화를 선도했던 대우(주)의 김우중 전前 회장을 비교해보고자 한다.
그들의 비교를 통해 우리는 휴식에 대한 CEO의 마인드 차이에 의해 기업의 운명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다.
잘 아는 바와 같이 혼다 소이치로 회장(1906~1991)은 경영의 귀재라고 불렸던 마쓰시타 고노스케와 함께 전후戰後 일본을 대표하는 위대한 기업인으로서 ‘엔지니어들의 영원한 표상’으로 존경받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모방연구나 무분별한 복제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독창적인 기술개발을 독려하기 위해 연구실패상硏究失敗賞을 세계 최초로 제정하고 실행에 옮긴 인물이다.
그는 99%의 연구실패가 1%의 연구 성공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연구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연구 환경의 조성이 시급하다는 점을 깨닫고 연구원들의 자유로운 연구 활동을 보장하는데 앞장섰다. 그 결과, 혼다(주)의 자동차 엔진기술은 이미 세계 최고수준에 도달했다.
또 그는 최선을 다했지만 불가피하게 실패한 연구과제, 즉 연구결과의 도출에는 실패했지만 실패원인이나 실패경로를 정확하게 밝혀낸 연구과제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는 대신, 포상과 승진으로 연구원들의 사기를 북돋워주었다.
그가 연구실패상 제도를 강력하게 추진했던 이유는 연구원들에게 미지의 연구과제에 대한 도전의욕을 고취시키고 연구실패에 따른 책임추궁이나 처벌로 인한 연구결과의 왜곡현상을 막기 위함이었다.
게다가 연구실패를 자산화資産化시킴으로써 같은 연구에서 반복적인 실수를 차단시키겠다는 기업인으로서의 강한 의지가 연구실패상 제정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창의적인 자세와 청년정신으로 일하면서 혼다(주)를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발전시킨 그는 휴식에 대해서도 독특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는 휴식을 대나무의 마디에 비유하면서 휴식과 개인의 발전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기업이건 사람이건 때때로 쉬면서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를 생각해야 합니다. 휴식을 대나무에 비유하자면 대나무의 마디에 해당될 것입니다.
마디가 있어야만 대나무가 자랄 수 있는 것처럼 사람과 기업도 중간 중간에 적절한 휴식을 취해야만 강하고 곧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라고. 더욱이 학벌學閥이 일천했던 그는 학력學力이 아닌 학력學歷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었다.
하마마츠 공업고등학교(현 시즈오카대학교)에서 청강생으로 재학 중일 때, 그가 시험을 치르지 않자 교장 선생님은 그를 불러놓고 “시험을 안 보면 수료증을 줄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수료증은 극장표만도 못하다. 극장표는 극장 좌석이라도 하나 주지만, 수료증은 직업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다른 사람의 교육경력을 무시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창의적 사고나 경험이 뒷받침되지 못한 교과서적인 지식을 경멸했을 따름이다.
한편, 대우(주)의 김우중 전 회장은 일 중독증 환자로 대우(주)의 세계 경영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1989년에 출간되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던 자신의 자서전 '세상을 넓고 할 일은 많다'를 통해 자기 스스로 일벌레였음을 밝혔다.
그는 다른 재벌 회장들이 즐기는 골프를 배우지 않았고, 술조차 마시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하루에 많아야 3~4시간 밖에 잠을 자지 않았으며, 남들이 다가는 여름휴가조차 반납했을 정도다.
당시 국내 재계 2위의 대우(주)의 회장이었던 그가 휴가를 보냈던 것은 딸의 결혼식, 큰 아들의 장례식, 그리고 뇌막하혈종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가 전부였다고 얘기한 바 있다.
이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일 증독증 환자였는가를 알 수 있다. 그렇게 황소처럼 일만 했던 그가 지금은 초췌한 노인이 되어 온갖 병고에 시달리고 있다.
대우(주)는 이미 침몰했고, 세계 경영을 주창했던 그는 국가경제를 망친 경제사범으로 낙인찍힌 상태다. 우리는 그의 영욕榮辱을 지켜보면서 창의적 사고가 전제되지 않는 일벌레의 비극적인 종말終末을 잊지 말아야 한다.
휴식은 창의력의 산실이다!
몇 년 전, 우리나라 쇼트트랙 선수들이 스케이트의 ‘날 들이밀기’ 전략으로 우승을 했던 적이 있다.
할리우드 액션으로 김동성 군의 금메달을 빼앗아간 오너는 비신사적인 매너로 지탄받아야 마땅하지만, ‘날 들이밀기’ 전략은 창의적인 전략으로 칭찬받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다.
일벌레인 개미처럼 무조건 앞만 보고 내달리는 쇼트트랙 선수보다는 잠재 경쟁자들의 행태를 주도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너링전략, 추격의 최적시점, 순위 굳히기 시점, ‘날 들이밀기’ 전략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거미형 선수가 진정한 챔피언감이다.
그러려면 쇼트트랙 선수도 앞으로 운동만 열심히 할 것이 아니라 창의적인 관점에서 ‘적敵도 알고 나我도 아는’ 지피지기知彼知己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휴식이다. 이제는 운동만 열심히 하는 선수보다는 ‘운동할 땐 열심히 하고, 쉴 땐 목숨 걸고 놀 줄 아는 선수가 롱런할 수 있다.
오늘도 우리 본가本家의 처마 밑에 있는 거미줄 끝에는 큼지막한 거미 한 녀석이 웅크린 채, 최적의 먹이사냥을 위한 전략마련에 고심하면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다.
김덕수 교수 |
충북대학교 경제학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 석박사과정을 이수하고 1995년도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동안 한국증권거래소 조사부, 고려대학교 강사, KAIST 경제분석연구실 선임연구원, 일본 과학기술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위원, 중등임용고사 출제위원, 국무총리실 소속 산업기술연구회 정부출연구소 기관평가위원, 자유민주연합 혁신위원회 위원장, 대구교통방송 경제해설위원, 공주대학교 기획연구부처장을 역임했다. 현재 공주대학교 교수회장 겸 사범대학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생각을 달리하면 희망이 보인다>, <김덕수 교수의 통쾌한 경제학>, <김덕수 교수의 경제 IQ높이기>, <김덕수 교수의 경제 EQ높이기>, <맨주먹의 CEO 이순신에게 배워라>, <한국형 리더와 리더십>, <게임의 지배법칙으로 자기를 경영하라> 등 다수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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