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이색 시위가 벌어졌다. 그동안 농민시위, 의약분업을 둘러싼 의사와 약사들의 시위, 노동자들의 파업시위, 전교조의 시위는 종종 볼 수 있었지만, 이날의 솥단지 시위는 아주 낯선 시위였다. “경기침체로 음식장사가 안되니 정치권이 책임지라!”는 식당 주인들의 구호를 들으면서 필자는 잠시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나라는 직업선택과 경제활동의 자유가 보장된 자본주의 국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식당을 할 것인지, 그만둘 것인지는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속하는 문제다.
정부나 정치권이 특정 개인에게 “○○식당을 개업하라!”고 강요한 적도 없고, 또 강요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게다가 “경기침체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는 주장 또한 이치에 맞지 않는다. 한국 경제가 최악의 상태였던 IMF 구제금융위기 때에도, 장사가 잘되는 식당은 항상 단골 고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물론, 경기가 침체되면 문을 닫는 식당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식당만 문을 닫는 게 아니다.
경쟁력이 없는 모든 업종의 가게들이 문을 닫게 되는 것이다. 또 망하는 가게는 모두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가격·품질·서비스 측면에서 이렇다 할 경쟁력을 갖지 못하는 한,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 가운데 식당이 망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기침체 때문이 아니라 다른 식당에 비해 맛좋은 음식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음식 맛만 뛰어나면 손님들이 제 발로 찾아와서 많은 돈을 쓰고 가는 게 소비자들의 공통된 심리다. 고객들 사이에 입소문이 괴력을 발휘하는 영역도 음식 분야다. 진짜 상인은 핑계를 대지 않는다!
식당의 성공여부와 관련하여 한 가지 흥미를 끄는 점은 ‘진짜 상인은 핑계를 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진짜 상인은 자신의 식당을 찾는 손님들이 줄어들면 그 원인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자기 자신한테서 찾는 경향이 강하다.
또 진짜 상인은 상도商道의 본질을 꿰뚫고 그것을 철저하게 실천하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업業’이 고객을 감동시킬 수 있는 최고의 음식을 제공하는데 있음을 인식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더욱이 그는 음식장사를 하면서도 이윤추구만을 지상과제로 삼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진짜 상인은 이문利文을 남기기보다는 사람을 남긴다"는 것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며, 소프트 혁명을 통해 아직까지 충족되지 않고 있는 고객들의 잠재된 식욕을 만족시켜주기 위해서 온갖 정성을 다한다.
진짜 상인은 다른 식당 주인들과 떼를 지어 다니면서 가당치도 않는 ‘떼법’을 주장하지 않는다.
진짜 상인들은 장사가 잘 되기 때문에 떼법을 주장할 필요도 없거니와 설령 장사가 안 된다고 해도 문제의 본질을 자기 자신에서 찾으려고 하기 때문에 패거리 자체에 동조하지 않는다.
그는 다른 식당 주인들과 어울려 다니며 대정부 투쟁을 할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 식당의 아이덴티티를 찾기 위한 비장秘藏의 소스를 개발하거나 새로운 음식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따라서 그가 운영하는 식당은 ‘맛 좋은 음식 개발 ⇒ 단골 고객의 급증 ⇒ 많은 이익 창출 ⇒ 더욱 더 친절한 서비스와 맛있는 음식 제공 ⇒ 더 많은 단골고객의 확보 ⇒ 엄청난 이익 창출 ⇒ ...’와 같은 선순환적 사이클을 밟음으로써 큰 명성을 얻게 된다.
생선초밥의 경쟁력이 비빔밥보다 앞서는 진짜 이유
일부 식당들은 맛좋은 음식과 친절한 서비스를 통해 많은 부와 명성을 얻고 있지만, 아직도 상당수의 식당들은 ‘업’의식의 부재로 큰 돈은커녕 푼돈조차 제대로 벌지 못하고 있다.
음식 맛은 차치且置하더라도 서비스에 관한 한, 한식韓食의 경쟁력은 일식日食에 비해 한수 아래다.
비빔밥과 생선초밥에서 한·일 양국간에 존재하는 음식 경쟁력의 현주소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한국 식당에서 비빔밥을, 일본 식당에서 생선초밥을 주문해보기 바란다. 비빔밥을 주문하면, 식당 주인은 온갖 채소들을 섞은 그릇(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들기름과 고추장까지 식당 주인 마음대로 넣어져 있다)과 밥공기, 된장국과 3찬 정도가 따라 나온다.
그런데 비빔밥은 고객의 취향을 무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필자는 고사리를 좋아하지 않는데, 식당 주인은 그릇에다 자기 멋대로 고사리를 다른 채소들과 섞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젓가락으로 고사리를 일일이 제거하고, 고추장을 필자의 입맛에 맞도록 재조정하는 번거로움을 겪은 다음에야 비빔밥을 먹을 수 있다.
또 비빔밥은 ‘빨리빨리’의 문화적 코드를 그대로 반영해주는 우리의 토속 음식이다.
일본인들은 밥과 여러 가지 밑반찬을 골고루 먹으면서 위장에서 그것들이 한데 섞일 수 있도록 느긋하게 식사를 한다.
그런데 비빔밥은 사전에 밥, 그리고 채소와 밑반찬을 한데 섞은 다음에 먹는 음식이기 때문에 위장이 그것을 섞어줄 수고를 덜어준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인들은 10분 이내에 한 끼의 식사를 마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편, 생선초밥을 주문하면 와사비를 곁들인 정갈한 생선초밥(이때 곁들이는 와사비는 대체로 맛만 살짝 내는 수준이다. 와사비를 더 넣을 것인지, 말 것인지는 전적으로 고객의 선택에 맡긴다)과 밑반찬, 그리고 빈 종지 2개가 따라 나온다.
그런데 2개의 종지그릇 가운데 1개의 종지는 아무것도 없는 빈 종지(흔히 초장을 담는 그릇이다)고 나머지 1개의 종지는 와사비가 들어있는 종지다.
거기에는 고객에 대한 식당 주인의 배려가 담겨져 있다. 즉 생선초밥을 초장에 찍어 먹을지, 아니면 간장에다 와사비를 풀어서 먹을지는 전적으로 고객의 선택사항으로 남겨두고 있다.
만약 비빔밥과 생선초밥이 국제 음식시장에서 경쟁을 한다면, 세계의 고객들은 자신의 취향과 입맛을 좀더 배려해주는 생선초밥(물론 고추장을 넣어야만 제 맛이 나는 비빔밥은 그 매운 맛 때문에 외면을 당할 수도 있다)을 선택할 것이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생선초밥은 이미 일본을 상징하는 세계적인 음식의 반열에 올랐지만, 비빔밥은 아직까지 그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그렇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고객의 취향과 입맛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집 가家’에서 한국인의 서비스 경쟁력 부재를 찾다!
한국 식당 주인의 서비스 경쟁력이 떨어지는 이유를 제대로 해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집 가家’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이 세상에서 한국인만큼 ‘우리’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는 민족도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 엄마, 우리 아빠, 우리 선생님, 우리 학교, 우리나라, 우리 회사, 우리 가족, 우리 동네 등등.
한국어에서 ‘우리’라는 표현이 들어가지 않으면, 아예 말이 되지 않을 정도다. 물론 영어에도 ‘우리’를 뜻하는 We가 있긴 하지만, 한국인처럼 그렇게 사용빈도는 높지 않다.
일본어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를 의미하는 ‘와따시(私)’가 주로 사용될 뿐, 우리 엄마나 우리 아빠와 같은 한국식 표현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한편, ‘우리’라는 단어의 어원은 ‘집’ 또는 ‘울타리’다. 한양대 명예교수인 김용운 박사가 쓴 '카오스의 날갯짓'이라는 책을 보면, 그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그 책을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돼지우리’가 ‘돼지 집’이라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우리’가 ‘집(家)‘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인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우리’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는 것은 ‘집(家)’, 즉 가족 중심의 집단주의 문화가 한국인의 사고체계를 오랫동안 지배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인은 최소 집단인 가정家庭으로부터 사회社會, 국가國家, 세계世界, 우주宇宙에 이르기까지 모든 질서를 ‘집(家)’의 개념으로 파악한다.
한국인은 사회라는 개념도 ‘가정보다 약간 확대된 사회일가社會一家’로 간주한다.
한국인은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거나 대화를 나눌 때, “어이, 이봐!”라는 표현보다는 “아저씨!, 아주머니!”라는 친근한 말을 많이 쓴다.
그런데 아저씨나 아주머니와 같은 호칭은 일면식一面識이 있는 일가친척들에게 주로 사용하는 말이다.
또 한국인은 나라마저 ‘거대한 집’으로 이해한다. 나라는 ‘국國’자만 써도 충분하다. 그러나 한국인은 ‘국國’자에다 반드시 ‘가家’자를 붙여서 국가라고 말한다.
더욱이 한국인은 나라보다 넓은 개념인 세계를 얘기할 때도 지구촌地球村 개념의 세계일가世界一家라고 말하며, 세계보다 더 큰 우주宇宙마저 ‘집(家)’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본다.
‘우주宇宙’라는 한자가 ‘집 우宇’와 ‘집 주宙’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그것을 입증해준다.
이처럼 집을 떠나서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민족이 다름 아닌 한국인이다. 그런데 문제는 ‘집(家)’에서 연유된 가족 중심의 집단주의 문화가 한국 식당 주인들의 서비스 정신 부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필자의 사례를 통해 설명하는 게 훨씬 더 현실감이 있을 것 같다. 과거 필자의 어머니는 김치나 반찬을 만들 때, 항상 자기의 입맛을 기준으로 젓갈을 고르고 간을 맞춘다.
그러다보니 식구들의 취향이나 입맛과는 상충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하루는 식탁에 올려진 겉절이를 먹어보고 “엄마! 왜 이리 매워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어머니께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먹기 싫으면 관둬라! 네가 배가 불러 그렇지, 어디 한번 굶어봐라!”하셨다.
어머니의 반격 속에는 “이 녀석아! 너랑 내가 얼마나 가까운 사이니? 그러니까 내가 해주는 음식은 설령 네 입맛에 맞지 않더라도 내 정성을 생각해서 그냥 맛있게 먹어주는 거야!”라는 훈계가 담겨있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어머니께 “만약 엄마도 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는 상품이라면, 저는 엄마라는 상품을 선택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해주고 싶은 충동을 느껴야만 했다.
그런데 필자 어머니와 같은 분들이 식당을 개업하거나 식당 주방에서 일할 경우, 그분들이 제공하는 음식 서비스는 처음부터 고객감동을 기대하기 어렵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한국인은 가정보다 큰 개념인 사회도 일가친척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낯선 사람들에게도 스스럼없이 아저씨, 아주머니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아주머니가 식당 주인이 되어 음식을 만들 때, 그분은 필자의 어머니처럼 자기 식당을 찾아준 손님을 고객이 아니라 일가친척으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고객을 일가친척으로 간주하는 순간부터, 그 식당은 필자의 집과 똑같은 음식제공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즉 “내가 만든 음식은 맛이 조금 없더라도 일가친척 아주머니가 만든 음식이니까, 시비 붙지 말고 대충 먹어줘!”라는 대충주의가 작동한다.
음식 속에 그것을 만드는 장인匠人의 혼과 열정이 녹아들지 않는 한, 그 음식은 허기진 배를 채우는 데는 적합할지 모르지만 고객감동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한다. 당연히 음식 맛이 그저 그럴 수밖에.
이제는 ‘집 가家’에서 새로운 경쟁력을 도출하자!
‘집(家)’에 내재된 가족 중심주의 문화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가족 중심주의 문화 속에는 가족간의 이해와 무한사랑이라는 긍정적인 요소도 있고, "대충해도 서로가 이해해 주면 그만이다"라는 부정적인 요소도 들어있다.
그런데 비즈니스를 하는데 있어서 가족 중심주의의 부정적인 요소인 대충주의나 동종업종의 사회구성원을 광의의 가족으로 간주해서 떼법을 도모하는 것은 독약과도 같은 존재다.
가족 중심주의 문화의 장점인 가족간의 무한사랑은 고객에 대한 무한사랑으로 승화시키고, 가족 중심주의의 병폐인 대충주의와 떼법 논리는 ‘업’의 논리로 전환시켜 고객감동의 완벽한 서비스 정신으로 구현해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한국인의 가족 중심주의는 새로운 차원에서 우리나라의 국제경쟁력을 뒷받침해주는 에너지로 작용할 것이다.
"독이 변하면 약이 될 수 있다"는 전독위약轉毒爲藥의 정신이 ‘집(家)’에서 활활 타오르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김덕수 교수 |
충북대학교 경제학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 석박사과정을 이수하고 1995년도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동안 한국증권거래소 조사부, 고려대학교 강사, KAIST 경제분석연구실 선임연구원, 일본 과학기술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위원, 중등임용고사 출제위원, 국무총리실 소속 산업기술연구회 정부출연구소 기관평가위원, 자유민주연합 혁신위원회 위원장, 대구교통방송 경제해설위원, 공주대학교 기획연구부처장을 역임했다. 현재 공주대학교 교수회장 겸 사범대학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생각을 달리하면 희망이 보인다>, <김덕수 교수의 통쾌한 경제학>, <김덕수 교수의 경제 IQ높이기>, <김덕수 교수의 경제 EQ높이기>, <맨주먹의 CEO 이순신에게 배워라>, <한국형 리더와 리더십>, <게임의 지배법칙으로 자기를 경영하라> 등 다수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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