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業'은 '용기'와 '시련'을 먹고 성장한다

2007. 4. 7. 00:45아름다운 글

‘業’은 ‘용기’와 ‘시련’을 먹고 성장한다
김덕수 교수의 파워칼럼-20장
2007-04-04 20:07:54 function sendemail(w,h){ var sWinName = "emailarticle"; var cScroll = 0; var cResize = 0; var cTool = 0; var sWinopts = 'left=' + ((screen.width-w)/2) + ', top=' + ((screen.height-h)/2) + ', width='+w+',height='+h+', scrollbars='+cScroll+', resizable='+cResize; window.open('./?doc=function/mail.php&bo_table=column&wr_id=191',sWinName,sWinopts); } function sendprint(){ var sWinName = "printarticle"; var cScroll = 1; var cResize = 1; var cTool = 1; var sWinopts = 'left='+0+', top='+0+', width='+720+', scrollbars='+cScroll+', resizable='+cResize; window.open('./?doc=function/print.php&bo_table=column&wr_id=191',sWinName,sWinopts); }
용기勇氣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씩씩하고 굳센 기운’이다. 그런데 노란색의 진가를 알려면 그것을 검정색과 대비시켜 보듯이, 용기의 참뜻을 알려면 그것을 절망과 대비시켜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절망이란 회색빛 그림자를 자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철鐵은 자기 몸에서 나온 녹綠으로 스스로를 망치듯이, 절망 또한 그것을 받아들이고 체념하는 자에게만 좌절감과 무력감을 안겨준다.

절망을 이겨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담담한 자세와 용기로 그것에 맞서는 것이다. 용기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담담한 마음인 동시에 극한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늠름한 기상氣像이다.

용기 있는 사람은 어떤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는다. 오히려 실패에서 값진 교훈을 찾고, 그것을 거울삼아 또 다른 도약의 길을 모색하는 사람이다.

세상은 저지르는 자의 것이다!

KBS의 톡톡 튀는 아줌마 아나운서인 이숙영씨가 쓴 '애첩기질 본처기질'이란 책을 보면, 용기와 관련된 2가지의 재미있는 일화가 나온다. 그런데 그것의 소제목은 ‘세상은 저지르는 자의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화 1]

옛날 어느 마을에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두 형제가 있었다. 무더운 여름날, 책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자 평소 호탕한 성격의 형이 동생에게 “잠시 동안 기방妓房에 들러 머리를 식히고 오자”고 제안을 했다.

그러나 체면을 중시하는 동생은 기방에 가고픈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점잖은 선비 체면에 무슨...?”하면서 그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하루 저녁을 잘 놀다온 형은 곧바로 글공부에 몰두했지만, 호기심으로 머릿속에 온통 여체女體가 어른거리는 동생은 형에게 “기방에서 여체를 만진 기분은 어땠느냐?”며 계속해서 물었다.

처음 몇 번은 농담으로 받아넘기던 형이 나중에는 견디다 못해 화를 버럭 내며 동생한테 이렇게 말했다.

“나는 3시간 동안 계집을 안고 돌아왔지만, 너는 30시간 동안 계집을 품고 있으니, 그래 앞으로도 얼마나 더 그 얘기를 끄집어 낼 작정이냐?”라고.

[일화 2]

옛날 어느 두 스님이 장맛비로 물이 불어버린 개울을 건너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발을 헛디딘 한 여인이 물살에 떠내려가며 “살려 달라!”고 구조를 요청했다.

한 스님은 그 여인을 업어주고 싶었지만, 옷이 물에 젖어 몸의 곡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여인을 바라보기가 남사스러워서 속마음과는 달리 구조요청을 외면해 버렸다.

그러나 또 다른 한 스님이 개울물로 뛰어들어 그 여인을 구조한 후, 등에 업고 개울을 건네주었다.

여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받고, 두 스님은 계속해서 산길을 걸어오는데 구조를 망설였던 스님이 여인을 업어서 개울을 건네준 스님에게 “여인을 업었을 때의 기분이 어떠했냐?”며 산길 내내 물었다.

그러자 잠자코 있던 그 스님 왈, “허허 이 사람아. 나는 불과 10여분 동안 그 여인을 업었지만, 자네는 10리 동안 그 여자를 줄곧 업고 있구만...”

이숙영 저, ≪애첩기질 본처기질(1990)≫, 문학사상사, pp.72~73 인용


필자의 빛바랜 독서카드를 들춰보니까, 위의 2가지 일화는 약 10년 전쯤에 읽고 정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 거기에는 같은 시기에 읽었던 ‘산양山羊의 우화寓話’까지 메모되어 있다. ‘산양의 우화’란, 산양의 우유부단함을 비판하는 것으로서 산양의 좌우 양쪽에다 똑같은 분량의 먹이를 갖다 놓으면, 그 녀석은 ‘어느 쪽부터 먹을까?’를 놓고 고민만하다가 결국 그 자리에서 굶어죽고 만다는 것이다.

그 내용의 출처는 일본에서 경영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가사마끼 가쓰토시가 쓴 '일하기 싫을 때 읽는 책'이다.

우리가 위의 2가지 일화와 ‘산양의 우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어떤 실패나 실수가 따른다고 해도 그것에 겁먹지 말고, 과감한 선택과 실행에 옮기는 용기와 결단력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적어도 그런 자세를 가져야만 험난한 세상살이에서 남에게 뒤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용기와 결단력, 불굴의 신념은 인간승리를 위한 동반자다!

삶의 의미이자 생존수단인 직업의 선택, 배우자의 선택, 대학의 선택에는 많은 고뇌와 번민이 따르기 마련이다.

또 그것에 대한 최종 선택에는 엄청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그런데 선택이 요구되는 시기에 선택 자체를 포기하거나 남에게 선택의 주도권을 넘기는 사람은 결코 자신이 주체가 되는 능동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다.

그러나 선택을 했다고 해서 그것이 항상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다반사茶飯事다.

용기는 실패와 좌절의 극복과 치유治癒를 위해서 탄생한 개념이다. 만약 용기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실패한 사람들은 실존주의 문학가 까뮈A. Camus가 말했던 것(까뮈는 ‘인간이 자살한다는 것은 곧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일‘이라고 얘기했다.)처럼 자살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용기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설령 실패를 경험했더라도 그것에 좌절하지 않고 계속 전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용기와 결단력, 그리고 불굴의 신념은 인간승리를 위해 함께 가는 동반자요, 아름다운 연인 사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필자는 제2부 1장부터 지금까지 ‘업’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했다. 그동안 필자의 글을 읽은 독자라면, ‘업’에 대해 많은 정보와 지식을 얻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여기서는 논의전개의 편의를 위해 ‘업’에 대한 개념을 복습Review하고자 한다.
 
‘업’이란, ‘다른 사람들과 분명하게 차별될 수 있는 자기 고유의 핵심역량core competence’을 의미한다. 또 자신의 ‘업’을 갖는데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이순신, 에디슨, 빌 게이츠 등을 들 수 있다.

이순신의 개인적 불행이 그의 ‘업’을 키웠다!

우선, 이순신부터 살펴보자. 그는 1593년 1월 26일자로 조선 조정에 올린 장계에서 자신은 해전海戰을 ‘업’으로 선택한 장군임을 명확하게 밝혔다.

1593년 8월 15일, 선조 임금은 그에게 삼도수군통제사를 제수하면서 1592년에 치렀던 10번의 해전에서처럼 일본 수군의 섬멸殲滅에 최선을 다해줄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선조 임금의 기대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갔다. 일본 수군들이 이순신 함대와의 해전을 기피하는데다 전염병의 창궐에 따른 병력 손실로 조선 수군은 해상작전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다.

그러자 선조 임금은 이순신을 불신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이순신을 제거하기 위한 왜군 측의 교활한 계략이 펼쳐졌고, 마침내 그들의 앞잡이였던 요시라의 감언이설甘言利說에 속아 넘어간 선조 임금은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하고 그 자리에 원균을 앉히는 인사를 단행했다.

그러나 원균은 1597년 7월 15일과 16일에 있었던 칠천량 해전에서 일본 수군에게 참패를 당한 채, 전사로 자신의 생을 마감했다.

절체절명의 위기감을 느낀 선조 임금은 감옥에 갇힌 이순신을 방면한 후, 제3대 삼도수군통제사에 재임명했다. 그러나 134척의 판옥선과 3척의 거북선, 1만 3,200여명의 조선 수군은 대부분 바다 속에 수장水葬되었거나 뿔뿔이 흩어진 뒤였다.

이순신에게는 오직 12척의 판옥선과 1,000여명의 조선 수군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 사실을 전해들은 선조 임금은 이순신에게 “해전을 포기하고 육지로 올라와서 권율과 함께 육전陸戰을 치르라.”는 어명을 내렸다.

그러나 이순신은 선조 임금에게 자신의 ‘업’이 해전임을 밝히고, 12척의 배를 가지고도 능히 일본 수군을 쳐부술 자신이 있다는 장계를 올렸다.

그로부터 얼마 후, 이순신은 명량해전에서 13척의 판옥선으로 133척의 일본 왜선과 싸워 승리함으로써 자신이 해전의 달인達人임을 만천하에 입증시켜 주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자신의 ‘업’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선조 임금의 어명御命까지 물리치면서 조선 수군의 실추된 명예와 자존심을 되찾았던 그의 용기와 불굴의 신념을 재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명량해전에서 조선 수군의 승리는 이순신에게 엄청난 개인적 불행을 불러일으켰다. 일본 수군은 패전에 대한 분풀이를 하기 위해 이순신의 아산 본가本家를 급습해서 집을 지키고 있던 그의 3째 아들 이면李葂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런 불행 속에서도 이순신은 절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이 목숨 걸고 지켜야 할 조국과 그 안에서 숨쉬고 있는 불쌍한 백성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패를 즐기면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했던 에디슨의 ‘업’

한편, 토머스 에디슨Thomas Alva Edison; 1847~1931은 ‘발명’을 자신의 ‘업’으로 설정했던 인물이다.

그는 축전기를 만들기 위해 무려 25,000번의 실험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납을 대체할만한 새로운 물질을 찾아내는 데는 실패했다. 하루는 그를 잘 아는 지인知人이 고지식하게 연구에만 몰두하는 에디슨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25,000번의 실험에서 실패만 거듭했으니 얼마나 상심傷心이 크시겠는가?” 그러자 그는 “천만에. 내가 하는 실험에서는 실패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네.

나는 25,000번 실패한 것이 아니라 건전지가 작동하지 않는 25,000가지의 새로운 방법을 발견했을 따름일세.”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라는 명언을 남긴 발명왕 에디슨은 어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인생관을 이렇게 피력했다고 한다.

“제 앞에 어떠한 시련이 닥쳐온다 하더라도 저는 결코 낙담하지 않을 것입니다. 숭고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성실, 인내, 용기, 상식과 같은 4가지 필수조건이 필요하며, 저는 그것에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나갈 것입니다.”

실패에 수반되는 시련과 역경에 절망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새롭게 바라보고 사고思考의 패러다임paradigm을 바꾸는 계기로 활용했던 그의 낙천적인 인생관과 용기가 그로 하여금 발명왕이 되게 한 원동력이었다.

에디슨은 생애 통산 1,300여 건의 특허권을 획득하고, 세계 초일류기업인 제너널일렉트릭GE사를 설립하여 미국의 경제발전에 기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GE사의 경영진에는 에디슨의 친인척이 단 한사람도 없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재벌 회장이면, 자손대대로 재벌 회장이 되는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나도 판이하다.

에디슨은 기업의 오너보다 경영능력이 출중한 전문 CEO가 기업경영을 하는 게 바람직스럽다는 선진 기업문화를 정립한 사람이다.

그런 에디슨에게 있어서 실패와 시련은 단지 새로운 성공을 확대 재생산하는 재료에 불과했다.

대학 중퇴자에서 백만장자가 된 빌 게이츠의 ‘업’

한국적인 시각에서 보면 빌 게이츠는 분명 괴짜다. 2007년 현재, 세계의 최고 갑부인 빌 게이츠(550억 달러)는 정보획득과 지식창출의 프로세스에 대한 통제력 확보를 자신의 ‘업’으로 설정했다.

또 그것의 실현을 위해 하버드 대학을 미련 없이 중퇴했던 사람이다. 그는 지난 1973년에 하버드 대학에 입학했지만, 2년 뒤인 1975년 대학 측에 자퇴서를 제출하고 어릴 적 친구인 폴 앨런P. Allen과 함께 MS사를 설립했다.

그런데 빌 게이츠가 세계 최고의 명문대학인 하버드 대학을 자퇴하기까지는 엄청난 용기와 결단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남의 시선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는 하버드대 학생의 이점을 모두 포기하고 위험하고 불확실한 자신의 ‘업(예: 컴퓨터 운용체계 개발과 IT기술 확보)’에 올인 했다. 그 결과, 그는 지금 세계에서 제일가는 백만장자가 되었다.

최근의 외신들에 따르면 빌 게이츠는 2007년 6월 7일 하버드 대학에서 열리는 제356회 졸업식에서 축하연설을 하고 명예졸업장을 받는다고 한다.

지난 2000년도까지 MS사의 CEO로 근무했던 빌 게이츠는, 자신의 친구인 스티브 발머S. Balmer에게 CEO자리를 넘겨주고 현재는 회장 직함만 갖고 있다.

그는 지난 2000년도부터 아내인 멜린다Melinda와 함께 기금규모(330억 달러)면에서 세계 최대인 자선단체 ‘빌과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운영하면서 전 세계인들의 보건향상과 빈곤퇴치, 그리고 교육환경개선을 위한 자선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번에 빌 게이츠가 하버드 대학에서 받는 명예졸업장은 그가 지금까지 펼쳤던 자선활동에 대한 공로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아무튼 빌 게이츠는 자신의 ‘업’으로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된데다 지난날 사업을 위해 제 발로 중퇴했던 옛 모교에서 명예졸업장까지 받게 된다고 하니, 그로서는 한꺼번에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행운아가 된 셈이다.

그렇지만 그의 용기와 결단력, 자신의 ‘업’에 대한 비전과 확신, 그리고 백만장자가 된 이후에 보여준 숭고한 나눔의 정신을 고려해 볼 때, 오늘날 그가 받는 사회적 대접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미국이 세계의 패권을 잡고 있는 이유도 빌 게이츠처럼 자신의 ‘업’에 매진하며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숨은 인재들이 다른 나라보다 많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김덕수 교수
충북대학교 경제학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 석박사과정을 이수하고 1995년도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동안 한국증권거래소 조사부, 고려대학교 강사, KAIST 경제분석연구실 선임연구원, 일본 과학기술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위원, 중등임용고사 출제위원, 국무총리실 소속 산업기술연구회 정부출연구소 기관평가위원, 자유민주연합 혁신위원회 위원장, 대구교통방송 경제해설위원, 공주대학교 기획연구부처장을 역임했다. 현재 공주대학교 교수회장 겸 사범대학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생각을 달리하면 희망이 보인다>, <김덕수 교수의 통쾌한 경제학>, <김덕수 교수의 경제 IQ높이기>, <김덕수 교수의 경제 EQ높이기>, <맨주먹의 CEO 이순신에게 배워라>, <한국형 리더와 리더십>, <게임의 지배법칙으로 자기를 경영하라> 등 다수가 있다.
< 공주뉴스=김덕수시민 기자/ news@gongjunews.net> >> 김덕수시민 기자 의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