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장-'누레오치바'와 '곰국'의 비애

2007. 5. 12. 02:18아름다운 글

25장-'누레오치바'와 '곰국'의 비애
김덕수 교수의 파워 칼럼
2007-05-11 16:14:45 function sendemail(w,h){ var sWinName = "emailarticle"; var cScroll = 0; var cResize = 0; var cTool = 0; var sWinopts = 'left=' + ((screen.width-w)/2) + ', top=' + ((screen.height-h)/2) + ', width='+w+',height='+h+', scrollbars='+cScroll+', resizable='+cResize; window.open('./?doc=function/mail.php&bo_table=column&wr_id=210',sWinName,sWinopts); } function sendprint(){ var sWinName = "printarticle"; var cScroll = 1; var cResize = 1; var cTool = 1; var sWinopts = 'left='+0+', top='+0+', width='+720+', scrollbars='+cScroll+', resizable='+cResize; window.open('./?doc=function/print.php&bo_table=column&wr_id=210',sWinName,sWinopts); }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아직도 일에 파묻혀 지내는 분들이 적지 않다. IMF 금융위기는 여러 부류의 사회적 고통을 잉태했다.

구조조정의 대상으로 지목되어 퇴출당한 분들은 실직에 따른 경제적 고통을 겪어야 했고, 직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업무량을 소화해야 하는 심적 고통을 받고 있다.

그렇지만 생존자들은 여우같은 아내와 토끼 같은 자식을 생각하면서 직장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지 못하고 안으로만 삭이고 있다. 그러는 동안 그들의 일중독 현상은 날로 심화되어 갔다.

한편, 일 중독자들은 자나 깨나 직장에서 처리해야 할 일들로 고민한다. 가족들 가운데 어느 누가 “이제는 가정도 챙겨야 하는 것 아니냐?”고 얘기하면, “그럼 직장 일은 누가 하고?”, 그리고 “내가 직장에서 밀려나면 우리 가족은 뭘 먹고 살지?”라며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들에게 서운해 한다.

일 중독자에게는 휴일도 휴일이 아니다. 쉬면서도 직장 일에 대한 고민 때문에 제대로 쉬지도 못한다. 또 그들 중에는 일요일 저녁만 되면, 월요일이 다가오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 월요병 환자들이 많다.

더욱이 일 중독자들은 직장에서의 직위를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그들은 직장상사나 부하직원 외에는 별다른 인간관계도 맺지 않는다.

오로지 폐쇄적인 공간에서의 자기 업무나 자기 팀의 업무, 승진에만 관심을 갖는다. 또 그는 특별하게 할 일이 없더라도 밤늦게까지 직장에 남아 있어야만 무엇인가 일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고, 그렇게 일하는 부하직원이 애사심이 강한 사람이라고 착각한다.

그들은 밤늦게 귀가해서 잠자는 아내와 자녀들의 얼굴을 보면서 “다 당신과 너희들을 편안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 아빠가 이렇게 늦은 거야! 그러니 아빠를 이해해주고 잘 자거라!”라며 안주 없는 캔 맥주로 자기 위안을 삼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일 중독자들은 휴일 날에 어쩌다가 가족들과 놀아주는 것을 대단한 이벤트로 착각한다. 그들은 가족들과 함께 즐기면서 노는 게 아니라 가족들에게 일방적인 희생과 봉사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가장家長들은 주말과 주일을 이용해서 가족들에게 무언가의 이벤트를 만들어주기 위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놀이공원이나 휴양지를 찾는다.

그러다보니 놀이공원이나 휴양지로 향하는 도로는 온종일 이들이 타고 나온 차량들로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더구나 놀이기구를 타야할 정도로 어린 자녀를 둔 젊은 가장家長들은 더 극심한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가장家長은 아빠라는 이름으로 놀이기구를 타려고 줄지어 기다리는 긴 행렬 속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한 놀이기구를 타고 나면 곧바로 다른 놀이기구로 자기자녀를 옮겨 태우기 위해서다.

가장家長이 원하는 것은 자기자녀가 행복한 모습으로 놀이기구를 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다.

가족들에 대한 가장家長의 착각

놀이공원이나 휴양지에서 돌아오는 차안에서 아내는 자녀들에게 “얘들아! 오늘 너희들은 너무나도 재미있었지? 그러니 아빠한테 감사하다고 말씀드려야지!”라고 말한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녀들이 합창하듯이 말한다. “아빠! 감사해요.”라고. 그 말을 듣고 아빠는 “그래, 오늘은 아빠가 놀아주었으니 내일부터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라고 조언한다.

이것을 보면, 아빠는 자녀들과 함께 여가를 보낸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놀아준 것이다. 즉 자녀들을 위해 자신의 천금같은 주말과 주일을 송두리째 희생한 것이다. 그러니 자녀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으로 자신의 수고에 대해 보답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자녀들을 위해 희생한다는 마음으로 아빠가 놀아줄 때, 그들이 느끼는 것은 아빠와의 정서적 교류나 따뜻한 사랑이 아니다. 오로지 아빠의 희생에 대해 반드시 좋은 성적으로 보답해야만 하는 심리적 부담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녀들은 그 심리적 부담의 실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게 된다. 따라서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이 갈수록 부담스러워지는 것이다.

요즘에는 초등학교 3학년만 되어도 아빠와의 외출조차도 몹시 꺼린다. 그 이유는 부담스러운 아빠보다는 자기 또래의 아이들과 노는 게 훨씬 더 마음 편하고 좋기 때문이다.

의무감에서 하는 가족들과의 계획된 이벤트는 변형된 형태의 또 다른 노동이다. 이러한 놀이가 부담스럽기는 아내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가족을 위해 희생한다거나 봉사한다고 말하지 마라. 엄밀한 의미에서 가족에 대한 희생과 봉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일 중독자인 당신이 심적 평화와 위안을 얻기 위해 스스로를 합리화시키고 있을 뿐이다.

누레오치바와 곰국의 비애

일 중독자들의 비애는 그들이 은퇴한 이유에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회사를 떠나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주던 직위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일본인 아내들은 일 중독자로서 가정을 내팽개친 채 회사 발전을 위해서 진력하다가 은퇴한 남편들을 누레오치바(ぬれおちば; 젖은 낙엽)이라고 부른다.

빗자루로 쓸어 없애려고 해도 땅에 딱 붙어서 잘 쓸려가지 않는 젖은 낙엽을 자신의 남편에다 비유한 개념이다.

이는 별다른 취미를 갖지 않은 채, 은퇴 후 마누라의 치맛자락만 붙잡고 다니는 남편을 떼어놓으려고 해도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상징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게다가 남자로서 성적性的 기능이나 매력도 한풀 꺾여 아무리 태워보려고 해도 매캐한 연기만 날뿐, 장작처럼 환하게 불붙을 기미도 보이지 않는 누레오치바들은 아내들에게 있어 그저 짜증나고 귀찮은 존재일 뿐이다.

일본의 아내들에게 누레오치바가 있다면, 한국의 아내들에겐 무시무시한 곰국이 있다. 한국에서 은퇴한 50~60대 남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곰국이라고 한다.

일 이외에 별다른 취미나 몰입할 대상이 없는 은퇴 가장家長은 하루 종일 집안에 있으면서 아침, 점심, 저녁 등 삼시 세끼를 아내에게 주문하는데, 문제는 아내가 그런 남편을 가장 싫어한다는 점이다.

남편의 그런 태도에 참다못한 아내는 마침내 곰국을 한 솥 가득 끓여 놓은 후, 화려한(?) 외출을 시도한다. “여보! 우리 친구들과 일주일 동안 여행을 다녀올 테니 그때까지 곰국이나 데워 먹으면서 집이나 잘 지켜줘요”라고 말하면서.

은퇴를 했으니 직장인으로서의 자존심도 사라진 상태이고, 자녀들은 심적 부담만 안겨주는 아빠를 멀리한 채 자기들이 좋아하는 짝을 찾아 떠나갔고, 수컷으로서의 기능마저 한풀 꺾인 남자로서는 아내의 지엄한(?) 명령을 군말 없이 따를 수밖에 없다.

한국의 은퇴 남성들에게 있어서 곰국보다 더 무서운 것은, 아내가 남편 몰래 이사를 가는 것이다.

50~60대의 은퇴 남성은 가정주부들에게 있어서 ‘가지고 놀다가 잃어버리면 더 이상 찾지 않는’ 골프공과 같은 존재다.

그래서 은퇴 남성들은 혹시라도 아내가 이사를 가자는 얘기를 하지 않는지? 주의 깊게 관찰하고 만약을 대비해서 만반의 준비를 한다.

즉 은퇴 남성은 혹시라도 아내가 자신을 버려두고 그냥 갈까봐 자기 옷 보따리를 꼭 껴안고 트럭의 조수석에 꼭 붙어 앉는다고 한다.

물론 이 얘기는 어떤 사람이 웃어보자고 지어낸 개그이지만, 요즘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름대로 의미심장한 얘기라고 생각된다.


누레오치바와 곰국의 비애를 막으려면...

누레오치바나 곰국의 비애는 비단 남의 얘기가 아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은퇴를 맞이하면, 누구나 누레오치바나 곰국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

이제 우리 남성들은 누레오치바나 곰국의 비애를 겪지 않으려면 더 늦기 전에 그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필자는 그에 대한 4가지의 성공전략으로 지적해보고자 한다.

첫째, 이미 은퇴한 남성들처럼 일 중독증에 빠져 가족에게 소홀히 하는 우愚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부터는 ‘직장과 가정이 모두 중요하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또 노후를 대비해서 연금을 붓듯이 앞으로는 가정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특히 가장家長으로서의 의무감에서 마지못해 하는 공식적인 가족 이벤트보다는 저녁식사 후에 가족들과 함께 나선 공원 산책이나 분위기 있는 찻집에 들러 오붓한 시간을 갖는 게 백번 낫다.

더욱이 죽을 때까지 짊어지고 가야 할 직책은 부장, 이사, 사장이 아니라 아무개 아빠와 누구 남편이라는 명함이다.

그러니 가족간의 따뜻한 정서교류에 힘쓰고, 평소에 자신의 아내에게 최선을 다하라. ‘남편인 내가 먼저 눈을 감는 게 편하다.

그러니 보약은 마누라에게 기꺼이 양보하겠다.’는 넓은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라. 그러면 아내로부터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자신이 미치도록 좋아하고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을 적어도 한 개 이상은 갖고 있어야 한다. 은퇴 남성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시간이 제일 많다. 그 많은 시간을 즐겁게 보내려면, 자신의 취미나 장기長技를 최대한 활용하는 게 좋다.

만약 그것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그런 취미나 장기를 갖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가령, 독서, 연구 및 집필, 사진 찍기, 등산, 그림그리기, 노래, 악기 다루기, 사회봉사, 바둑, 장기, 고스톱도 괜찮다.

그리고 일주일에 6일 정도는 출근하겠다는 자세로 자신의 바이오리듬에 맞춰 이런 취미생활에 전념해야만 아내들로부터 어느 정도 해방될 수 있다.

아내들의 입장에서도 자신을 보채며 못살게 구는 사람보다는 끊임없이 두뇌 세척을 하면서 의미 있고 활기차게 노년을 보내는 사람이 남편으로서 매력적일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셋째, 은퇴 전에 자신의 명의로 재테크를 잘 해서 어느 정도의 돈을 갖고 있으면 은퇴 후에 아내에게 구박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늙은 아내에게도 돈은 중요한 관심 대상이다. 은퇴 남편의 호주머니가 든든하다면, 아내도 그런 남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한국 남성들이여! 젊었을 때, 돈 좀 있다고 호기豪氣를 부리면서 탕진하지 마라. 어떤 사람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를 주장하면서 “돈 욕심을 버리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무엇을 몰라도 한참을 모르는 사람의 헛소리에 불과하다.

돈은 늙을수록 더욱 더 필요하다. 그러니 죽을 때까지 그것을 꼭 쥐고 살아야 품위 있게 살 수 있다.

또한 돈은 자신의 늙은 몸을 지켜주고, 모든 사람이 자신을 떠받들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그 논리는 늙은 아내에게도 그대로 통용된다.

넷째, 평소에 운동을 열심히 해서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을 함께 유지해야 한다. ‘부모의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다.

아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은퇴 이후에는 또 다른 질병이 찾아오기 쉬운 만큼 건강관리에 좀더 많은 신경을 써서 아내에게 심적인 부담을 안겨주지 말아야 한다.

위에서 열거한 4가지 사항만 유념해서 미리미리 준비해 놓으면 은퇴한 이후에도 당당한 노년의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누레오치바와 곰국의 얘기가 우리 사회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그날이 하루빨리 다가오기를 진심으로 기대해본다.




    김덕수 교수
충북대학교 경제학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 석박사과정을 이수하고 1995년도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동안 한국증권거래소 조사부, 고려대학교 강사, KAIST 경제분석연구실 선임연구원, 일본 과학기술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위원, 중등임용고사 출제위원, 국무총리실 소속 산업기술연구회 정부출연구소 기관평가위원, 자유민주연합 혁신위원회 위원장, 대구교통방송 경제해설위원, 공주대학교 기획연구부처장을 역임했다. 현재 공주대학교 교수회장 겸 사범대학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생각을 달리하면 희망이 보인다>, <김덕수 교수의 통쾌한 경제학>, <김덕수 교수의 경제 IQ높이기>, <김덕수 교수의 경제 EQ높이기>, <맨주먹의 CEO 이순신에게 배워라>, <한국형 리더와 리더십>, <게임의 지배법칙으로 자기를 경영하라> 등 다수가 있다
< 공주뉴스=김덕수시민 기자/ news@gongjunews.net> >> 김덕수시민 기자 의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