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분청사기에 핀 철화와 이삼평의 ‘눈물’

2022. 8. 3. 11:58아름다운 글

[기자수첩] 분청사기에 핀 철화와 이삼평의 ‘눈물’
기자명 이건용 기자   입력 2022.08.03 09:08  

‘나 때문에 네가 생겨난 줄은 알지만,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따금 너를 떠나보내고 싶다. 잠시의 이별 뒤 우리는 다시 만나겠지만, 며칠 동안이라도 너 없이 한번 살아보고 싶다.’ ‘욕심’이란 놈을 떼놓기 위한 시인의 처절함이 엿보인다.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역대 대선 TV토론의 손꼽히는 명언으로, 지난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는 이 말 한마디로 많은 국민들의 공감을 샀다.

정유재란 당시 일본에 끌려가 세계적인 도예 명가(名家)를 이룬 ‘심수관가(沈壽官家) 도예기념관’이 2011년 12월 전북 남원에 건립된데 이어 심수관가의 본관인 경북 청송에도 2014년 3월 ‘심수관도예전시관’이 들어섰다.

지금 충남 공주 또한 500년 전 이 땅에 번성했던 ‘철화분청사기’의 부흥을 이끌 마중물을 붓고 있다. ‘계룡산 철화분청사기’는 전남 강진의 상감청자와 경기 광주의 청화백자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도자기 중 하나로 형태와 문양이 자유분방하고 서민적이면서 예술성이 뛰어남에도 도자중심지로서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도자집적단지 조성은 우리나라 3대 도요지로서의 역사적 정통성과 자생적 도예마을인 계룡산도예촌, 대전과 세종 등 주변 대도시권과의 편리한 접근성, 매년 100만 이상이 찾는 계룡산 등 발전 잠재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그 출발점이다.

‘계룡산 분청’이라는 별칭까지 붙은 지역 고유의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계승 발전시키는 것은 물론 삶의 질을 중시하는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따른 문화향유 수요 충족과 체험관광, 교육관광, 체류관광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한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될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계룡산 철화분청사기’와 더불어 일본 자기의 시조로 추앙받고 있는 ‘이삼평’은 또 다른 축복이다.

공주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인 1596년경 일본으로 끌려간 이삼평은 16세기 중반 조선에서 소멸한 계룡산 철화분청사기를 굽기 시작했다. 현재 일본 3대 자완 기법인 철화자기 ‘에가라츠'가 이렇게 탄생됐고, 1990년 가을 아리타 시민들이 2억 원을 모급해 동학사 입구인 박정자삼거리에 이삼평 현창비를 세우기도 했다.

대한민국 사적 제333호인 공주 학봉리 요지는 조선 세조의 명으로 처음 창설돼 성종 초기까지인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 초반까지 존립했던 관립 분청사기 가마터였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무령왕릉과 왕릉원 발굴 조사에 나선 1927년보다 2년여 앞서 한반도 최초로 파헤친 도요지가 학봉리 일원이라는 점은 도자예술의 극치미를 보여주는 ‘철화분청사기’의 중요성을 미루어 짐작케 한다.

흑색을 나타내는 독특한 철화 원료를 캐냈던 공주시 향토문화유적 제30호 구무동굴, 동굴 주변으로 철회분청과 인화분청 등을 굽던 15곳에 이르는 가마터, 이삼평 현창비가 우뚝 선 이삼평공원 등 계룡산 초입에 위치한 학봉리는 한마디로 도자문화의 ‘보물창고’다.

철회분청의 역사성과 상징성, 장소성과 활용 가능성, 접근성, 부지의 확장 가능성 등등 모두에서 학봉리 일원이 비교 우위를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2019년 ‘이삼평 도자문화예술단지 조성 기본계획 수립 연구보고서에도 잘 드러난다.

문제는 지방재정투자심사다. 문턱을 넘기가 만만찮다. 사업비와 보상비 등이 관건이다. 여기에 ‘이삼평’이란 이름을 포함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표까지 던져졌다. 몇몇의 노이즈마케팅이 빚은 결과물로 씁쓸한 대목이다. 1993년 이후 30여년에 걸친 땀방울을 모르는 바 아니고, 그들의 우려 또한 이해 가능한 부분이다. 그렇다고 아예 산통을 깨겠다고 덤비는 것은 고약하다. 그것도 이제와서. 지금의 사업명과 사업부지 부정은 사업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철화분청사기 활성화를 통한 대한민국 대표 도자도시로의 도약을 부정하는 것과 진배없다.

나만 할 수 있고, 내가 아니면 안 되다는 발상 또한 위험하기 짝이 없다. 내 집 앞만을 고집하는 핌피(PIMFY)는 욕심이 아닐는지, 기득권을 끝까지 누리겠다는 이기주의의 발로는 아닌지. 그래서 행복한지, 살림살이가 좀 나아질지 묻고 싶다. 초 치고 재 뿌리는 것을 갈등으로 읽어선 곤란하다. 이제 공은 오는 9일 있을 지방재정투자심사위원회에 넘어갔다. 어떤 결론이 내려질지 지켜볼 일이다. lgy@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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