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를 품에 안은 가야산의 비경

2009. 4. 18. 03:53아름다운 글

해인사를 품에 안은 가야산의 비경 
유옥희 기자의 가야산 산행기
  글쓴이 : 유옥희     날짜 : 09-04-18 02:50    
ⓒ 웅진산악회 제공.

웅진산악회106회째 산행일인 4월 2일. 때는 바야흐로 꽃피고 새들 노래하는 화창한 봄날, 바쁜 일손 잠시 거두고 모든 시름 다 털어내려 이른 아침 공주를 떠나고 있다.

오늘따라 낯선 얼굴들이 많다. 회원들이 자기소개를 하는 중간에 미처 아침식사를 거른 회원들을 배려해 건네주는 맛난 시루떡이 따끈따끈한 채 내손에도 놓여진다.

충남 서산시와 예산군 사이에도 가야산이 있다고 하던데, 그렇지만 우리는 경북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에 위치한 가야산국립공원이 오늘의 산행지이다.

1972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가야산은 소의 머리를 닮았다 해서 牛頭山(우두산)이라고도 하고, 불교용어로 소를 ‘가야’라 하여 가야산이 되기도 했단다.

가야산은 칠불봉(1,433m)과 우두봉(상왕봉, 1,430m)가 200m의 등반거리로 마주보고 있다. 가야산 대부분이 경북 성주에 속하는데, 해인사가 경남 합천에 있어서 보통은 합천 가야산이라 한다.

ⓒ 웅진산악회 제공.

오늘 산행 들머리는 백운동 쪽에서 시작됐다. 진입로에 ‘목욕금지’라는 주의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요즘 너무 가물어 가는 산마다 물소리 듣기란 참으로 하늘의 별 따기인데..

가야산에선 백운3교 쯤 지나는데 목욕할 만큼은 아니어도 계곡의 물소리가 심심찮게 들리기 시작했다. 길을 걷는다는 건 자기와의 격렬한 싸움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늘도 난 맨 후미에 뒤처지게 되었지만, 오늘은 내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일주일 전 수술하고 퇴원한 친구를 위해서.

나이가 들면서 가까운 사람들이 아파 눕기도 하고, 또 먼 곳으로 떠나는 걸 보면서 참 쓸쓸해진다.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인연들을 만나고 또 지나치며 살았던가!

하얗게 샌 세월이 이렇게 산행하는 날이면 나를 새롭게 되돌아보게 하는 시간의 여유를 준다. 시간은 쌓이지 않지만 기억은 축적되어 남아 숨쉬기 때문일까?

서성재부터 칠불봉까지 가파른 철계단과 암반 등을 힘들게 통과해야 했다. 등산로는 잘 정비돼 있어 오늘 신입회원들의 안전에는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 웅진산악회 제공.

곳곳에 펼쳐지는 비경을 보며 오르니 어느새 칠불봉의 위용이 보이고 그 앞에 우두봉이 떡 버티고 있었다. 칠불봉에서 우두봉(상왕봉)까지는 불과 200m가량.

간간히 응달에는 아직도 잔설이 희끗희끗 그대로였다. 몇 년 전 12월 겨울산행으로 가야산 맞은편에 보이는 매화산을 오른 적이 있다. 매화산과 가야산은 같은 지맥으로 경남에선 명산으로 치는 산으로, 그 때 매화산에서 바라본 가야산은 정말 예뻤다.

한겨울을 견뎌낸 두꺼운 나무의 등껍질을 뚫고 돋아난 새싹과 야생화가 우릴 반기고, 넓은 바위 위에는 새끼 비둘기 한 쌍이 우리들의 예고없는 방문에도 거침이 없이 먹이 취하기 바쁘다.

아름다운 풍경을 지나치기 무섭게 서로 한 컷, 칡즙도 나누고 과일도 나누고 때로는 정상酒도 미리 나누면서 고갈된 에너지도 충전하고, 이게 후미를 쫓는 자들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시간은 벌써 점심때가 지났는지 허기지다. 우두봉에 먼저 도착한 동료들의 함성이 칠불봉을 향해 메아리친다. “힘내세요~, 어서 오세요~.”

ⓒ 웅진산악회 제공.

일행이 우두봉(상왕봉)을 향해 달린다. 까짓것, 우린 두 봉우리를 단숨에 내려와 우두봉 밑 넓은 잔디밭에 늦은 점심상을 차렸다.

이당이 준비해두고도 못 가져왔다는 ‘봄똥겉절이’가 간절하다. 그러나 어쩌랴 다음으로 미룰밖에.. 내려오는 길 어디선가 길 잃은 염소 울음소리가 발걸음을 붙잡는다.

이렇게 오늘도 아름다운 가야산을 완주하고 해인사를 향해서 내려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해인사는 많이 들어봤지만 직접오긴 처음이다.

그런데도 너무 늦어 깐깐히 살펴보지 못하고 스쳐간다. 못내 아쉽지만, 해인사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계곡과 소나무 숲으로 조화를 이뤄 어찌나 어찌나 아름답던지 이대로 오래도록 머물고 싶다.

산이 있어 행복하다. 살풋한 추위에도 우중에도 아랑곳없이 달려가는 산행인의 가슴엔 이미 행복이 가득하다. 산이 거기 있다는 것만으로도. 난 내일도 산을 찾으리라.
< 특급뉴스=유옥희 기자/ leeguny98@paran.com> >> 유옥희 기자 의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