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몰미망인 오열..“6월이오면 더 가슴아파”

2008. 6. 8. 14:17아름다운 글

 전몰미망인 오열..“6월이오면 더 가슴아파” 
 “눈물로 보낸 한 많은 세월..호강 한 번 못 해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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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이건용     날짜 : 08-06-08 14:13    
▲ 전몰미망인 등 보훈가족들이 충령탑에 헌화 분향하고 있다.
ⓒ 공주뉴스 이건용

“호강 한 번 못하고 한 많은 세월을 보냈는데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린다 생각하니 왜 이렇게 처량하고 슬픈지 모르겠다”는 6.25전몰미망인의 장탄식이 호국보훈의 달 6월 하늘을 맴돈다.

호국보훈의 달 6월,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기꺼이 바친 애국선열들의 위대한 희생정신을 가슴 깊이 되새기는 달이다.

그러나 아직도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반민족행위자가 버젓이 국립묘지에 안장되고, 잘못된 과거를 반성하자는데 국력낭비다, 사회갈등을 부추긴다며 실체적 진실규명을 꺼리고 있다.

친일매국노들은 떵떵 거리며 이 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독립유공자들과 그 가족들은 모든 것에서 소외된 채 가난을 대물림 받고, 13만여명에 달하는 6.25참전용사들이 이름 모를 산야에 홀로 묻혀 반세기가 넘도록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데도 정부는 그동안 팔짱만 껴왔다. 때문에 보훈가족들은 6월이 오면 더욱 가슴 아프다.

▲ 지난 4일 모범 보훈가족으로 선정돼 표창패를 수여한 전몰군경미망인회 박성희(77)할머니(사진 좌측)와 정채봉(79) 할머니.
ⓒ 공주뉴스 이건용

지난 4일 모범 보훈가족으로 선정돼 공주시장 표창을 받은 6.25전몰미망인인 박성희(77) 할머니는 “어찌 그 악몽 같았던 세월을 말로 다 하겠습니까, 남편의 전사 통보를 받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눈물로 세월을 보냈지요”라며 한 많은 세월을 회상했다.

아픈 과거를 떨쳐버리기라도 하듯 긴 한숨을 내쉰 박 할머니는 16살에 청양군 미당면으로 시집와 결혼 5년여 만에 6.25가 터지고, 제주도에서 훈련을 마쳤다던 남편은 그해 강원도 금화전투에서 전사했다.

당시 큰 아들은 기어 다니고, 할머니의 배 속엔 둘째가 자라고 있었지만 3대 독자였던 남편은 이마저도 모른 채 눈을 감았다. 눈물로 밤을 지세며 별별 생각을 다했지만 부양해야 할 시부모님과 두 아들을 버리고 돌아설 수가 없었다.

변변한 농사치도 없던 박 할머니는 유복자인 둘째 아들을 등에 업고 남의 집 식모살이로 근근이 연명했다. 그리고 시부님이 돌라가시자 그 없는 형편에도 아이들 공부를 위해 공주로 와 채소장사, 다슬기 장사, 풀빵장사 등등 안 해본 장사가 없을 정도로 억척같이 살았다.

남들이 젊은 나이에 재가하라고 권유도 하고, 숙맥이라고 놀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저 아이들 뒷바라지 하고, 먹고 살기 바빴다. 앞만 보고 달려온 한 많은 세월, 이젠 백발성성한 노인이 돼 있다.

내일모레 미망인회에서 제주도 여행을 간다는데 몸이 아파 못 따라 간다는 박 할머니는 “생전 처음 제주도 구경하나 싶었는데 그 마저도 틀렸다”며 글썽이는 눈물을 애써 감추며 연신 가슴을 쓸어 내렸다.

▲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온 전몰군경미망인들.
ⓒ 공주뉴스 이건용

같은 날 공주시장 표창을 받은 6.25전몰미망인인 정채봉(79) 할머니의 사연도 구구절절 기막히다. 18살에 주미동으로 시집와 결혼 2년여 만에 6.25에 참전한 남편으로부터 부산에 있다는 편지 한 장 남기고 홀연히 산화했다.

없는 살림에 어린 자식 돌보랴, 40년 넘게 시부모님 봉양하랴 눈코 뜰 새 없었다. 직접 지게질을 해가며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 한 많은 60여년의 세월이 흐르고 이제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뼈마디가 쑤셔 약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다.

정 할머니는 “하루하루 살기 바빠 좋은 게 뭔지, 행복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살았는데”라며 “호강 한 번 못해보고 죽는다 생각하니 슬프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호국의지와 애국정신이 갈수록 퇴색되는 것이 안타깝다. 그리고 말만 앞세우는 보훈정책, 선심성 보훈정책으로는 보훈가족들의 비통한 심정을 달래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하는 김순난 전몰군경미망인공주지회장(65)은 “저분들이 살면 얼마나 살겠어요..흑흑..”하며 결국 오열했다.

김순난 회장은 “평생 제주도 구경 한 번 못한 분들이 많아 이번에 가려고 하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다. 몸이 아픈 분들이 많아 간다고 했다가 못 간다고 했다가 참으로 어렵다”면서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그분들의 심정을 생각하면..”라고 말끝을 흐리며 또다시 오열했다.

김 회장은 “미망인들이 일반인보다 못한 대접을 받고 있다”고 혀를 차면서 “보훈대상자 예우 및 지원 조례에 쓰레기봉투를 지원토록 돼 있으면서 나이 먹었다고, 무식하다고 깔보는 것 같다. 상하수도 요금감면혜택 등도 타지자체에 비해 형편없다”고 비난했다.

김 회장은 이어 “60%에 그치고 있는 의료혜택을 받으려면 그나마 대전 보훈병원까지 가야 한다. 하루 종일 걸리는 시간도 문제지만 연로하신 노인들이 아픈 몸을 이끌고 가려면 여간 힘든 게 아니어서 치료를 포기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면서 미망인들에 대한 위탁진료병원 이용혜택 확대를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