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슴살이 17년, 세경 한 푼 못 받았유”

2008. 12. 10. 01:15생생공주

“머슴살이 17년, 세경 한 푼 못 받았유” 
“먹여주고 재워주고 결혼까지..자식처럼 돌봤다”
  글쓴이 : 이건용     날짜 : 08-12-09 23:57    
▲ 정씨 일가 4식구가 현재 머물고 있는 월 7만원의 사글세 방.
ⓒ 특급뉴스 이건용

“세상에, 세상에 이럴 수는 없습니다. 17년간 부려먹던 사람을 이 엄동설한에 알몸으로 내쫓다니! 부자인 사람이, 더구나 교육자라는 사람이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그래서는 안 되지요.”

최근 공주시 장기면 소재지인 도계리 일원에 인근의 부자집에서 17년간 일하다 무일푼으로 쫓겨났다는 장애인 정씨 모자(母子)의 사연이 회자되면서 동네 분위기가 갈수록 을씨년스러워지고 있다.

정 모(41)씨와 청각장애 2급인 어머니 김 모(66)씨가 장기면 00리 우 모(71)씨 집에서 쫓겨난 것은 지난달 17일경으로, 이들 모자는 7만원짜리 사글세도 내지 못하는 딱한 형편에 있다.

정씨는 현재 지난 2006년 결혼한 중국인 아내와 10살짜리 딸, 병든 어머니까지 4식구가 장기면 도계리의 사글세 단칸방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정씨와 같은 마을에 살았던 한 주민은 “정씨가 아무리 글도 모르고 숫자개념도 없는 숙맥이라고는 하지만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느냐?”며 “더구나 동네 부자고, 교육자라는 분이 저러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혀를 찼다.

그의 말에 의하면 정씨가 지난 2006년 중국인 아내를 맞으면서부터 집주인 우씨와의 갈등이 시작, 최근 남편 정씨와 시어머니 김씨의 통장을 내놓으라고 하자 결국 쫓아냈다는 것.

그는 “정씨 모자의 통장을 집주인 우씨가 관리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돈을 인출하는 것은 물론 자기집 전기세까지 이들 모자의 통장에서 빠져 나가게 한 것으로 안다”며 "파렴치한 사람"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두 모자가 우씨의 그 많은 농사일과 목장 일을 다해왔는데도 불구하고 이제는 자기 마음대로 못한다는 이유로 10원 한 푼도 주지 않고 한 겨울에 거리로 내쫓은 것은 대명천지에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며 우씨의 행실을 비난했다.

그는 또 “우씨의 전답이 수십 마지기에 젖소농장까지, 그 많은 일을 정씨 모자가 17년간 도맡아 했다면 그 푼 값만도 수 억 원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정씨의 하루 임금을 적게 잡아 4만원씩 6,205일(17년)을 계산하면 2억 4,800여만원, 정씨 모친 김씨의 푼 값은 1억 9,000여만원(3만원*6,205일), 도합 4억 3,400여만원에 이른다는 계산이다.

정씨의 아내 김 모(41)씨는 “집주인 우씨에게 남편과 시어머니의 통장을 넘겨받았을 때 돈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면서 “남편은 그동안 단 한 번도 은행에 가서 돈을 인출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안다, 모두 우씨가 알아서 관리하고, 돈 도 자기 임의대로 인출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정씨에게 생계주거비로 지원된 보조금은 지난 2000년부터 현재까지 1,033만여원에 이르는 것으로, 시어머니 김씨에게도 지난 2000년부터 장애인수당·교통수당·기초노령연금 등 896만여원이 지원, 모두 1,900여만원이 지원된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는 또 “우씨 집 전기세까지 남편의 통장에서 빠져나간 것으로 확인됐다”며 “내가 남편의 돈을 빼내 중국으로 도망갈 것이란 우씨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억측에 불과하다. 이렇게 푸대접 받고 살 바엔 차라리 나가서 사는 것이 훨씬 나을 것 같아 나온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한국에 들어와 지금 남편과 재혼한 만큼 딸과 시어머니를 모시고 다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을 뿐 다른 생각은 없다”면서 “다만 중국에 남아 있는 아들과 딸에게 어느 정도 생활비를 송금해야 하기 때문에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마음만큼은 우씨 집에 있을 때보다 훨씬 편안하고 행복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정씨 또한 “통장을 돌려받은 이후 지난 9월과 10월에 은행에 들렀을 뿐, 이전에는 모두 우씨가 돈을 인출해 왔으며, 통장 개설 당시에도 은행에 간 사실이 없다”고 밝혀 기본적인 실명확인조차 하지 않고 통장을 개설해 준 00농협에도 파문이 일 전망이다.

정씨는 이어 “모든 연락은 집주인 우씨에게 전달됐기 때문에 보조금 지원과 관련해서도 직접 통보받은 사실은 없으며, 통장을 개설했다는 사실도 우씨가 말해줘 그때 알았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정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00농협은 금융 실명거래법을 위반한 것뿐만 아니라 작은 동네에서 우씨가 정씨가 아닌 것을 뻔히 알면서도 통장, 인감, 비밀번호가 일치한다는 이유를 들어 다른 사람에게 돈을 인출해 줬다는 도덕적인 비난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우씨는 “정씨 일가가 살던 연기군 전의면 00리는 동생의 처갓집 동네로, 동생의 소개로 산 중턱에 움막을 짓고 살 정도로 사정이 딱해 이들을 데려오게 됐다”면서 “숫자도 글도 모르는 사람을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가르치며 자식처럼 보살펴 왔다”고 말했다.

우씨는 이어 “월급을 주기로 하고 데려온 것이 아니라, 딱해서 데려왔을 뿐인데도 최선을 다해 보살펴줬다”면서 “그간의 살림살이와 생활비는 어디서 나왔겠냐?”고 되물었다.

우씨는 또 “먼저 온 정씨가 어머니와 동생들까지 데리고 오고 싶어 해 모두 거두어 줬으며, 그간 집안 대소사까지 일일이 챙겨주면서 모든 정씨 일가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우씨의 말에 따르면 그간 입혀주고, 재워주고, 먹여준 것은 물론 정씨가 어눌해 말이 통하는 사람과 결혼시켜야 될 것 같아 중국을 10여 차례 오가며 중국 조선족과 두 번의 결혼식을 올려줬다는 것.

또 정씨에게 400만원짜리 보험을 들어줬으며, 정씨 동생의 전셋집 비용으로 600만원, 정씨 동생의 치료비와 장례비로 수백만원을 지출했다는 것.

이외에도 정씨가 목부로 있을 당시 일머리를 몰라 젖소가 유방염에 걸리는 바람에 수천만원, 트랙터 사고로 800만원, 오토바이 사고로 인한 병원비, 최근 정씨의 실수로 인한 축사화재 등 수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내치지 않고 어떻게든 거두어 주려고 최선을 다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씨는 “지금의 정씨 아내는 온지 며칠 만에 '통장의 돈을 빼달라'고 해 '안된다'고 했더니 그때부터 딴 마음을 먹은 것 같다”면서 “2년만 더 일해주면 100평짜리 집을 마련해 주겠노라고 약속했지만, 막무가내로 남편 정씨를 꾀여 서울로 갔다가 한 달 만에 다시 돌아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씨 일가를 데려다가 그간 손해만 봤지만, 지금도 여전히 정씨 일가에게 손을 놓은 것은 아니다”라며 “상황을 조금 더 살펴본 후에 4식구가 살 수 있는 집이라도 마련해 줄 요량”이라고 밝혔다.

우씨는 끝으로 “정씨의 중국인 아내는 지금의 가족보다 중국으로의 송금에만 신경을 쓰고 있어 큰일”이라면서 “중국인 아내말만 믿고 내 말을 안 믿는 정씨가 참으로 딱하지만, 그동안 해온 것처럼 부모 역할만큼은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사태의 당사자인 우씨는 지난해 마을 공동재산으로 내려오던 832평의 논을 매각하면서 동네 주민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으며, 결국 민사소송까지 벌여 대법원에서 승소를 얻어 내긴 했지만 같은 동네 주민들과의 갈등의 골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장기면 사회복지 담당자는 이 같은 사실관계를 파악한 후 곧바로 통장을 정씨 일가에게 돌려주도록 조치를 취하는 한편, 이들을 돕기 위해 여러 가지로 고민하는 등 최선을 다하고 있다. 
< 특급뉴스=이건용 기자/ leeguny98@empal.com> >> 이건용 기자 의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