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숙의·토론문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2020. 8. 23. 18:05아름다운 글

[기자수첩] 숙의·토론문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건용 기자 승인 2020.08.23 09:50

[금강일보 이건용 기자] 민주주의를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 중 하나가 토론문화다. 고대 그리스가 민주주의를 꽃피울 수 있었던 것도 토론문화 때문이다. 정치, 경제, 사회 등 주요 사안들에 대한 토론은 물론 주요 정책 결정 또한 아크로폴리스(acropolis)와 아고라(agora)에서 이루어졌다.

민선7기 김정섭 호의 핵심 키워드가 ‘소통’이라면, 소통창구로 내세운 게 토론이다. 지역의 현안을 해결하고, 지역의 미래를 설계하는데 의사소통(意思疏通) 즉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을 마중물로 삼겠다는 김 시장의 강한 의지가 담겨있다.

시민의 시정 참여기회 확대를 통해 열린 행정을 구현하겠다는 포석으로, ‘신바람 정책톡톡’이 벌써 16회째를 맞고 있다. 그간 인구, 경제, 청년, 노인, 보육, 다문화, 체육 등 지역의 현안을 놓고 머리를 맞대왔다.

시민과 전문가들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들을 행정에 접목시켜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 정책을 발굴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둬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시민들의 다양한 아이디어 보따리를 푸는 데는 아직도 서투른 면이 없지 않다. 지난 20일 고마에서 가진 정책톡톡이 그랬다.

밤 산업의 현 주소를 들여다보고 앞으로의 미래를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지 고민하는 자리였지만, 첫 출발부터 삐걱거리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토론 주제가 사전에 주어지지 않아 심도 있는 논의가 어렵다는 불만이 쏟아졌다. 준비되지 않아 회의 진행이 어렵다는 김 시장의 불만도 튀어 나왔다.

부족한 회의 준비와 매끄럽지 못한 진행 탓에 참석자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의욕만 앞세운 어설픈 회의진행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석자들은 밤 수확 철 자원봉사자들의 적극적인 활용을 통한 일손부족 해소, 수확 기계장비 지원 확대, 외지 밤의 공주밤으로의 둔갑을 막기 위한 이력관리제 도입 및 품질인증제 도입, 밤 가공업체들의 원활한 밤 수급을 위한 유통망 구축,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밤 생산농가조합 일원화 등 다양한 의견이 개진됐다.

공주시의 정책톡톡이 토론(debate)인지 토의(discussion)인지에 대한 구분도 필요해 보인다. 토론이냐 토의냐에 따라 회의진행 방법이 다르고, 사회자의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토론이 자신의 해결책을 상대편과 제 삼자에게 납득시키는 시도라면, 토의는 의논과 협의를 통해 해결책을 찾아내고자 하는 시도다. 공주시의 정책톡톡이 찬반양론으로 팽팽히 맞서기보다 각자가 가진 다양한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고 교환하고 검토함으로써 문제 해결책을 도출해낸다는 점에서 토의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과열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주제를 벗어나지 않도록 유도하고, 발언 시간과 순서를 조절해 토론이 원만히 진행될 수 있도록 돕는 토론 사회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반면 토의 사회자는 다양한 의견이 개진될 수 있도록 돕고 의견을 종합하는 역할에 머무른다.

그런 측면에서 사전 조율도 없는데다 준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사회자 역할을 거부한 김 시장의 핀잔은 ‘엄살’에 가깝다. 밤 산업이 가야할 방향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자유롭게 발표하면 될 것을 논제를 사전에 고지하지 않았다며 딴지를 건 일부 참가자들의 태도 또한 스스로의 준비부족을 시인한 셈이다. 토론장에서 밝힌 4가지 논제는 ‘공주밤산업의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에 비춰 충분히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부족한 회의 준비와 매끄럽지 못한 진행이 ‘옥의 티’였다면, 공주밤생산가공유통협의회의 장학금 200만 원 기탁과 마스크 1000개 사전 기탁은 ‘옥빛’을 발했다.

토의와 토론 모두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생각의 차이를 확인하면서 더 나은 해결방법을 찾는 의사결정 과정이라는 공통점을 갖는 만큼 상호보완적으로 활용하면 바람직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주최 측과 참여자 모두의 철저한 준비 또한 숙의의 토론문화로 가는 지름길이다.

lgy@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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