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하늘이 회색빛인 일요일이다. 나는 아침 일찍 메모장과 필기구를 챙긴 후, 대전 국립현충원으로 향했다.
다음 주는 여러 가지 업무로 인해 국립현충원을 방문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은 지난 7월 20일 서해상에서 야간 비행 임무 중 전투기 추락사고로 순직한 고故 이규진 중령(이하 이 중령)의 묘소를 찾아가 그의 넋을 위로해주었다.
내가 이 중령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와 함께 순직한 고故 박인철 대위(이하 박 대위) 때문이다. 나는 지난 6월 6일 현충일에 박 대위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날 박 대위는 우리 공군의 최신예 기종인 F-16(일명, 파이팅 팰콘) 전투기를 조종하는 정식 파일럿이 된 후, 서울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는 자기 아버지 묘소 앞에서 “아버지가 지키시던 하늘을 이제부터 제가 책임지겠습니다”라는 다짐을 했다.
그의 아버지는 1984년 F-4(일명, 팬텀기) 전투기 조종사로서 한미연합훈련인 팀스피릿에 참가했다가 불의의 추락사고로 순직한 고故 박명렬 소령이다.
그날 TV 방송과 주요 일간지는 대를 이어 조국의 창공을 지키는 부자父子 전투기 조종사의 뒷얘기를 소개했다.
현재 나는 국립현충원에 묻혀 있는 호국영령들 가운데 죽음의 의미가 남다른 분들을 추적해서 그들의 불꽃같은 삶을 기록해 나가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약 20여명에 이르는 호국영령들의 삶을 정리했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기록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책으로 엮어서 이 세상 사람들에게 그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널리 소개할 생각이다. 그리고 지금은 대전 국립현충원을 위주로 활동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서울 국립현충원까지 그 범위를 확대시켜 나갈 계획을 갖고 있다.
아무튼 그날 나는 TV 방송과 신문을 보면서 조만간 고故 박명렬 소령의 삶과 죽음을 추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묘소가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있는 데다 최근 공사公私간의 바쁜 일들로 인해 그의 가족(박 소령의 부모님, 미망인, 아들 박 대위)과의 인터뷰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7월 21일 새벽에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F-16 전투기(일명, 파이팅 팰콘) 서해상에서 야간비행임무 중 추락, 조종사 이규진 소령 및 박인철 중위 실종’이라는 헤드라인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나는 기사 속의 박인철 중위가 고故 박명렬 소령의 아들이 아닌 다른 전투기 조종사이길 간절하게 빌었다.
젊은 공군 엘리트들의 죽음이 누구하나 안타깝지 않을까마는, 그래도 부자父子가 창공에서 대를 이어 산화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비극적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만 있다면, 온몸을 던져서라도 박 대위의 죽음을 막아주고 싶었다. 왜냐하면 박 대위의 빛나는 도전정신을 누구보다 가슴 아프게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완으로 끝난 박 대위의 아름다운 도전정신!
다섯 살의 나이로 아버지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했던 박 대위에게 고故 박명렬 소령의 존재는 녹회색 조종복 차림의 빛바랜 사진과 희미한 기억이 전부였다.
또 그는 홀로 된 어머니를 보면서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고, 평범한 직장인이 되어 어머니와 함께 살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에 대한 박 대위의 감정은 ‘빨간 마후라’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졌고, 그는 결국 재수까지 하면서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4년간의 생도생활과 20개월의 혹독한 비행교육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정식 파일럿을 의미하는 빨간 마후라와 조종흉장을 받았다.
그때가 2007년 2월 2일이었다. 박 대위는 그것을 아버지의 영전에다 바친 후, “당신께서 걸어가신 조종사의 길을 이제 내 운명으로 받아들인다”는 감회를 밝혀 주위 사람들을 숙연하게 했다.
맨 처음 박 대위 가족들은 그의 공군사관학교 입학을 극구 말렸다고 한다. 똑똑하고 믿음직스러웠던 아들의 순직, 사랑하는 남편의 갑작스런 사망에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을 겪었을 박 대위의 조부모님과 어머니로서는 소중한 손자와 아들마저 잃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박 대위는 가족들의 만류를 설득하면서 공군사관학교를 택했고, 기본 비행교육과정부터 고등 비행교육과정에 이르는 지옥훈련을 묵묵히 감내하면서 파일럿의 꿈을 키워나갔다.
마침내 그는 F-16 전투기 조종사로서 거듭 태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비운의 그는 ‘야간비행’의 저자인 생텍쥐베리가 그랬던 것처럼 야간비행임무에 나갔다가 자신이 그토록 아끼고 사랑했던 조국의 창공에 영원히 안기고 말았다.
이처럼 애석하고 안타까운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 나는 파일럿의 꿈을 만개滿開시켜보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산화한 부자父子 전투기 조종사의 영전에 머리 숙여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고자 한다.
또 선배, 동료, 후배 조종사들의 애끓는 흐느낌을 보면서 “이제 조국의 영공 수호 임무는 그대들에게 부탁한다. 우리 부자는 오늘의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라는 말로 이별을 고하는 고故 박명렬, 고故 박인철 부자에게 눈물어린 거수경례로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아비 없는 베넷웃음 젖 고름에 아들을 훌륭한 전투기 조종사로 키운 뒤, 미련 없이 조국의 하늘로 내보냈던 박 대위 어머니께는 심심한 위로의 인사를 올린다.
그녀는 자랑스러운 우리 모두의 엄마인 동시에 우리가 보살펴주어야 할 소중한 이웃이다.
앞으로 우리 국가와 국민은 이들 부자 전투기 조종사가 남겨 놓은 기구한 운명의 유가족들에게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최근 돌아가는 사회상을 살펴보면, 우리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 심히 유감스럽다.
고故 윤영하 소령을 비롯한 5인의 서해교전 전사자들에 대한 추모식, 2006년 6월 7일 동해상에서 F-15(일명, 이글기) 전투기의 추락사고로 순직한 조종사 고故 김성대 중령과 고故 이재욱 대위의 영결식, 이번 F-16 전투기의 추락사고로 자신들의 짧은 생을 마감한 고故 이규진 중령과 고故 박인철 대위의 영결식이 사회적 관심을 끌지 못하고 오로지 그들만의 슬픈 행사로 조용히 치러졌다.
오히려 다른 나라에 놀러가서 저가低價 비행기를 탔다가 추락사고로 숨진 여행객들과 탈레반들에게 인질로 잡힌 샘물교회 사람들의 얘기가 정치권을 비롯한 국내외 언론들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고 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의 생명은 그 자체로 소중하며,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모든 죽음에는 그 나름대로 가치의 경중輕重이 있게 마련이다. 남의 나라에서 휴가를 즐기며 돈을 쓰다가 죽은 여행객의 가치가 어떻게 국가 공동체를 위해서 산화한 젊은 군인의 가치보다 더 클 수 있는가?
만약 이것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 관행이라면, 이제 국가는 더 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탈레반에 억류된 22인 천사들의 도전정신
지금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들에게 억류된 22인의 인질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매우 다양하다.
우선 무슨 종교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입장 차이가 존재하고, 또 큰 정부론을 지지하느냐, 작은 정부론을 지지하느냐에 따라서도 견해가 다른 것 같다.
작은 정부론을 지향하며 무신론자인 나는 탈레반에 억류된 22인의 우리 이웃들을 ‘천사’라고 부르는데 동의하며, 그분들이 조속한 시일 내에 가족들의 품으로 무사귀환 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다만, 나는 22인 천사들의 도전정신에 대해 평소 느껴온 몇 가지 아쉬운 점을 얘기해 보고자 한다.
첫째, 나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고행과 자기희생이 수반되는 자원봉사를 선택한 그들의 행동에 대해 높이 평가한다.
그동안 나는 길거리나 역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어깨띠를 두르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협박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일종의 혐오감을 갖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마음속으로 “당신들이나 하나님 많이 믿고 천당에 가서 오랫동안 살아라!”라는 야유를 퍼부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국내외의 오지奧地를 돌면서 선행과 자원봉사로 하나님의 복음을 일깨워주는 숭고한 사람들을 만나면, 무신론자인 나도 하나님에 대해서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의 인질사태를 지켜보면서 안타까웠던 것은, 22인의 천사들이 ‘종교 상대주의’에 대해서 너무나도 무지無知했다는 사실이다.
과거 ‘문화 상대주의’에 대한 무지가 프랑스의 여배우(그녀 이름은 브르지도 바르도였다.)와 한국인 사이에 ‘개고기 논쟁’을 불러일으켰듯이 ‘종교 상대주의’에 대한 이해부족이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 간에 예기치 않은 충돌이나 이번과 같은 인질사건을 초래할 수 있음을 냉철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둘째, 정부가 안전상의 이유를 들어가며 22인 천사들의 아프가니스탄 행을 만류했지만, 그들은 정부의 권고를 무시하고 아프가니스탄으로의 선교여행을 강행했다고 한다.
22인 천사들의 그런 행동이 자칫 다른 종교를 믿거나 무신론자들에게 일종의 종교적 오만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유서까지 쓰고 갔으니 그곳에서 조용히 죽어라!”, “내가 낸 세금으로 그들의 몸값을 지불하지 마라!”, “위험이라는 푯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너희들의 의지대로 갔으니 정부에게 도움을 청하지 말고 하나님한테 부탁하라!”는 일부 네티즌들의 분노가 그런 분위기를 대변해준다.
선교행위가 제 아무리 중요하다해도 ‘안전’을 도외시함으로써 정부와 국민들에게 엄청난 누를 끼치는 행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분명하게 말하건대, 하나님이라고 해서 모든 이들의 안전을 100% 책임져주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하나님께서 배형규 목사의 목숨을 지켜주셨는가?
셋째, 무모한 도전은 비록 그 뜻이 숭고하더라도 결코 아름다운 도전이 될 수 없다. 더구나 남의 나라에서 그들이 믿는 종교를 폄훼하거나 무시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도전행위는 또 다른 가치충돌을 불러일으킬 개연성이 아주 크다.
즉 가난한 이슬람국가인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들에게 있어 하나님은 마호메트보다 한 수 아래인 존재에 불과하다.
더욱이 그들에게 있어 22인 천사들의 선교여행은 자칫 자본력을 앞세운 기독교, 더 나아가 미美제국주의 오만불손한 침략행위로 오해받을 수 있는 소지 또한 다분하다.
탈레반들이 23인의 천사들 가운데 종교 지도자에 해당되는 배 목사를 가장 먼저 살해했고, 그것도 온몸에 10여발의 총탄세례를 퍼부었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기독교에 대한 탈레반의 분노를 가늠하게 해주는 키워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자는 ‘논어’를 통해서 ‘서恕’의 정신을 강조한 바 있다. ‘서’란, ‘내가 싫어하면 남도 싫어하니 내가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마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입장 바꿔 생각하기’가 ‘서’의 본질이다. 현재 기독교 문명이 이슬람 문명보다 경제적으로 조금 더 잘산다고 해서, 이슬람 국가와 그곳 사람들을 함부로 무시하면 곤란하다.
이슬람 문명의 가난과 질곡桎梏은 ‘자문화 중심주의’에 빠져서 개혁과 개방을 소홀히 한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슬람 문명은 아라비아 숫자, 기하학을 비롯한 수리數理분야, 고대 과학기술분야, 건축분야의 발달을 주도하면서 세계 문명을 선도했던 찬란한 역사를 갖고 있다.
또 중세 기독교 사회가 암흑기에 빠졌을 때, 이슬람 문명은 당초 기독교 사회가 갖고 있었던 지식과 지혜를 스펀지처럼 흡수함으로써 훗날 르네상스 시대를 여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런 만큼 이슬람 국가의 사람들은 자기 종교, 자기 국가에 대한 자존심이 대단히 강하다.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국의 부시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도전할 수 있는 힘 또한 그런 자부심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도전은 겸손에 기초해야 아름다운 법!
나는 우리 젊은이들의 도전정신을 아름답다고 보는 사람이다. 비록 파일럿을 향한 박 대위의 원대한 꿈과 도전정신은 미완未完에 그쳤지만, 그가 보여준 순수한 열정과 청년정신은 우리들의 가슴 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 박 대위는 생텍쥐베리가 쓴 ‘어린 왕자’의 주인공과 같은 존재로 다가온다. 또 22인의 천사들은 하나님의 참사랑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새로운 선교의 세계를 개척하고자 노력했던 젊은이들이다.
다만, 선교를 위한 방법론 측면에서 약간의 문제가 발생했을 뿐이다. 그들의 용기와 자기희생 정신이 녹슬지 않는 한, 그들은 탈레반들의 마음을 변화시켜 모두 다 건강한 몸으로 가족들의 품에 안길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27세의 나이로 자신의 불꽃같은 생을 마감한 아름다운 청년 박 대위의 순진무구한 영혼과 우리들의 소중한 친구 자매인 22인 천사들에게 부디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김덕수 교수 |
충북대학교 경제학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 석박사과정을 이수하고 1995년도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동안 한국증권거래소 조사부, 고려대학교 강사, KAIST 경제분석연구실 선임연구원, 일본 과학기술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위원, 중등임용고사 출제위원, 국무총리실 소속 산업기술연구회 정부출연구소 기관평가위원, 자유민주연합 혁신위원회 위원장, 대구교통방송 경제해설위원, 공주대학교 기획연구부처장을 역임했다.
현재 공주대학교 교수회장 겸 사범대학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생각을 달리하면 희망이 보인다>, <김덕수 교수의 통쾌한 경제학>, <김덕수 교수의 경제 IQ높이기>, <김덕수 교수의 경제 EQ높이기>, <맨주먹의 CEO 이순신에게 배워라>, <한국형 리더와 리더십>, <게임의 지배법칙으로 자기를 경영하라> 등 다수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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